나만이 걸어온 그 길(1) -정명석 선생님의 위대한 삶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설립자이자 국제문화예술평화협회의 창립자이신 정명석 선생님의 위대한 신앙과 정신을 통해 이 시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온 정명석 선생님의 지난날 삶의 행적을 통해 그가 외치고자 했던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정명석선생님의 저서인 ‘나만이 걸어온 그 길’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은 위 저서를 재편집한 것으로써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정명석 선생님에 대하여∥
정명석 선생님은 1945년 3월 16일 충남 금산군 진산면 월명동에서 아버지 정팔성 장로와 어머니 황기쁨 권사 사이의 7남매 중 셋째로 출생하였다. 10대 때 산(山)기도를 시작해, 21년간 수도 생활 및 노방전도를 진행하였고, 성경을 2천여 회 읽으시며 60년동안 연구하였다.
1966년경 군 입대 후 2번에 걸쳐 베트남전에 참전하였으며, 1978년6월1일 서울에서 새 시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여 ‘오직 하나님’ 사상을 바탕으로 기독교복음선교회를 설립하여 하나님과 예수님께 배운 말씀을 세계 70여개국에 전파하였고, 국내외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성삼위의 사랑을 전하고 참된 신앙인의 삶을 지도해 준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자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이다. 그동안 깊은 기도를 통해 5만여 잠언을 쓰고, 150여 권의 종교 서적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1995년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한국 시문학 100년사를 총망라한 『한국 시 대사전』(2011)에 시 10편이 등재되는 등 그동안 4천 편에 이르는 시를 쓰고, 베스트셀러 시집 『영감의 시』시리즈 7권과 시선집 『내 고향 월명동 표적의 골짜기』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가는 길이 달랐다∥
정명석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으로 하늘길만 걸어오신 분이다. 보통 사람과 다른 길을 가고자 했던 이와 같은 정명석 목사님의 삶은 가족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를 지켜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고 비방했지만, 결국은 그의 비범함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커다란 물줄기가 되어 세상 중심에서 도도하게 흘러가게 된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저마다 길을 걸어오고 걸어간다. 나도 나만이 걸어온 내 인생길이 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오늘의 이 하늘 인생을 살기 위함이었구나.'하고 마음 깊이 절실하게 깨달아진다. 내 인생의 고통과 고뇌들은 모두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보기 위함이었으니, 한때의 괴로움은 오늘날의 기쁨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영웅 열사들도 그러했고,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등 성서의 중심인물들도 하늘을 만나기 전에는 각자 자기만이 겪으며 가는 눈물겨운 길들이 있었다. 나 또한 내 인생에 있어 파란곡절이 많았다. 가정에서 나를 이해하기까지는 거의 30여 년이 걸린 것 같다. 하늘이 숨겨서 그렇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가정의 무지로 인해 나의 고통과 시련이 더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선지자라 할지라도 가정과 고향에서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 받는 그 고통이 심하다고 하셨다.
보통 사람과 같은 삶과 생활을 원했던 가족들에겐 남다른 나의 기도 생활이 이해되지 않는 행실이었으니 나의 말과 행동은 주목을 받게 되고 미친 자로 취급할 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인생들을 육적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지만, 깊은 산속에 묻혀 1주일, 2주일, 혹은 한 달씩 기도하다 사망의 세계에서 무가치하게 살아가는 그 영혼들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쓰라림과 불쌍함이 파도쳐 밀려왔다. 그럴 때는 농사보다도 그 영혼들을 건지고 싶어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 고향 숲속 다릿골 기도굴을 헤치고 나와 1500~3000장씩 전도지(傳道紙)를 싸 짊어지고 전도의 길을 떠났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발길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행실이었다.
내가 부모 형제가 시키는 대로 내 인생길을 걸어왔더라면 오늘날 이 길을 전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이 기도하고 깨닫는 가운데 하늘이 감동을 주는 대로 살아온 삶이 오늘의 삶이었다. 외롭지만 나는 나만의 인생길을 걸었다. 나뿐 아니라 형제들도 마치 새 새끼들이 한 둥지에 살다 각각 날아가듯이 모두 어렸을 때는 같이 살다가 자기만이 가는 길을 가고, 나 역시 나만이 가는 길을 걸어왔다.
∥대둔산 용문골에서∥
또 정명석 선생님은 21년간의 산기도와 수도 생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상하며, 수도 생활 내내 수도 없이 걸어야 했던 고생길이었으나 체질도 마음도 바위 절벽에 붙어사니 보람도 있고 환경에 정도 들었다, 낮에는 해 등불에 성경을 읽고 해가 지면 별로 수놓은 하늘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도하고 찬양도 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내가 사명을 받고 하나님의 공적인 섭리역사를 펴기 전, 그때는 수도 생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대둔산 용문골의 바위 절벽 자체가 내 집이었다. 성자는 늘 함께하시며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가르치셨다. 대둔산의 바위 절벽이 비바람으로 수억만 년 깎여 번질번질하듯이, 내 몸도 마음도 생각도 혼도 영도 시대 말씀과 기도로 깎이고 닦여 번질번질했다. 인생의 '마음 닦기, '행실 닦기, '진리 찾기'는 바위 절벽의 '길 닦기'같이 어려웠다. 기약 없는 생활은 언제까지인지, 얼마나 긴긴 세월인지 물어도 성자는 대답도 없으셨다. 내가 그만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하늘 뜻에 의해 끌려가되, 내가 깨닫고 알고 가야 되는 길이니 스스로 하고자 하는 힘이 커야 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오래 못 가고, 누가 잡아끌어도 그 역시 끝이 곧 보이기 때문이다.
내 육신이 홀로 걸어왔어도 내 옆에는 전능자 절대신, 성자가 같이 따라 걸으며 함께하셨다. 21년간 때를 따라 하나님과 성자가 정하신 뜻을 따라 나만의 길을 걸어오면서 대둔산에서 기도 생활을 안 했으면, 내게 주신 시대 말씀을 듣고 따라오는 자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성자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만이 걸어온 길, 섭리사만이 걸어온 길의 깊은 사연이 담긴 구경거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래서 나만이 걸어온 그 길을 모두 깨닫고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라고 성자는 나와 함께 행해 놓으시고 이 글을 쓰게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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