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산책] 4.교부 시대
1) 교부 시대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세계 각지로 흩어져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설립하고 선교에 나서는 과정에서 교리를 정리하고 신학을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교부敎父 Church Fathers 또는 Father of the Church'는 기독교 초기 1세기 말에서부터 8세기에 교리의 정립과 교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면서 후대에 영향을 주는 저술을 남긴 위대한 주교 또는 신학자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이는 본래 바울이 고린도전서 4:15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라고 자신을 '교회의 아버지'라고 표현한 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어느 교부의 초상 /이미지, Daum)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기독교 초기의 교부들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는데, 첫째는 신약성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사도들의 직계 제자들로서, 로마의 클레멘스, 안디옥의 이냐시오, 스미르나의 폴리갑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 다음으로 2세기 무렵에 기독교회 내부에서 발생한 이단들, 곧 영지주의, 계시문학적 종말론의 열광주의적인 몬타니즘 등을 가려내며, 이들과 신학적으로 대적하던 순교자 유스티노,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로, 리옹의 이레네오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2세기 말부터는 여러 지역에서 중요한 교부들과 저술가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기독교 신학에 기초를 형성하며 기독교 신학 전통을 수립해 준 이들로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와 치프리아노, 그리고 로마의 히폴리토와 노바시아노 등입니다.
그 후 로마제국 치하에서 박해받던 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고 제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대중적인 입교세례를 통해 양적으로 급속하게 팽창하며 신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는데, 니케아 공의회(325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 에베소 공의회(431년), 칼케돈 공의회(451년) 등을 통해 여러 이단들을 배격하며, 이른바 '정통 교리'를 확정하고 공포할 수 있었습니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사이에 신학적 인식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서방교회에서는 교회론과 성사론이 발전하고, 동방교회에서는 성삼론과 그리스도론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 무렵 서방교회는 카르타고 교회가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보조를 맞추어 중심권을 만들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4대 공의회'가 모두 동방교회의 지역에서 개최된 사실이 입증해 주듯이, 동방교회는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등으로 교구가 크게 나뉘어져 서로 경쟁하며 신학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교부학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교부들은 대부분 이 시대에 속합니다.
동방교회에서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아타나시오, 카파도키아의 대 바실리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 니사의 그레고리오, 알렉산드리아의 치킬로, 역사학자 에우세비오, 설교가 요한 크리소스톰, 예루살렘의 치릴로 등이 활동했고, 서방교회에서는 위대한 교부라 불리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푸아티에의 힐라리오,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예로니모, 레오 1세, 히에로니모 등이 있습니다.
[이해림 작가 경력]
CGM 대학부 선교사 섭리신학 강사 현) 서울강서 여성분과 상담위원 <저작권자 ⓒ 제이에스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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