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의 예언
∥10대 때 방황의 길에서 고뇌하다∥
나는 10대부터 방황 길에 접어들면서 인생 문제와 부딪쳐 머리를 싸매고 살아야 했다. 머릿속에서 겪는 고통은 누가 곁에서 치료한다고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신앙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나의 삶과는 별개였기에 항상 곤고함을 면치 못했다. 마음의 한계를 깨닫고 나의 무지를 개탄하고 한탄하기 시작했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갈수록 더 산이었다. 그 정신적인 고뇌는 뼈가 쑤시는 고통,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첫째, 달동네에 사는 가난의 고통, 빈부 격차에서 오는 고통이었다. 둘째, 못 배운 고통이었다. 셋째, 외롭고 쓸쓸하고 적적한 두메산골에 사는 환경의 고통이었다. 내가 자란 곳은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는 산골짝이었다. 넷째, 못생겼다는 콤플렉스였다. 다섯째, 말더듬이로서 언어의 장벽도 나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생각은 하지만 표현을 잘 못하는 언어불구자였다. 여섯째, 가정에서 부모, 형제들로부터 무시를 당할 때마다 받는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네가 뭘 안다고?" 하면서 무시를 했다. 또, 동네 사람들로부터도 초라한 모습에 대해 무시를 받았다. 신학을 했다는 신앙의 선배들에게는 미친놈 취급을 받았는데, 그들은 나를 대할 때마다 아주 우습게 보았다. 내게 미쳤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이로 인한 심적 고통이 엄청나게 컸다. 일곱째, 인생의 진로 고민이었다.
∥대전에서 만난 점쟁이 노인이 손금을 봐 주다∥
그 당시 나를 칭찬하며 희망적인 앞날을 말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이 내게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었다. 대전 시외버스 주차장 옆에 천주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의 담장 앞에 않아 점을 치는 한 노인이 내게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내 손을 덥석 잡고서 손금을 봐 주었다. 그 노인이 내 손금을 보고서 아주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젊은이 앞날을 보니 세계를 한 나라같이 가소롭게 보며 다스릴 자다."라고 하였다. 그때로서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시네요. 나, 바쁜 사람입니다. 시간이 아까우니 이만 가겠습니다. 얼마요? 내가 손금을 보고 싶어 본 것은 아니지만, 복채나 받으시오." 하고 3백 원을 주었다. 그랬더니 노인은 화를 벌컥내면서 돈을 받으려고 본 것이 아니라고 하며 오히려 고함을 쳤다. 그리고 큰사람이 왜 그렇게 사람을 대하느냐고 꾸중까지 했다. "나중에 젊은이가 세계를 누비며 돌아다닐 때 분명 내 얘기를 할 거요. 그렇게 시간이 아까우면 가던 길이나 가 보시오." 했다. 그리고 자기는 신에 감동되어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마음이 끌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순천자(順天者)가 될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해 주었다. 당시 나는 노방 전도를 하며 전국을 혼자 돌아다녔는데, 그날은 공주를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 노인이 중얼거리듯 '내가 15년동안 이 자리에서 점을 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는데, 이같이 큰 점괘가 나온 자는 처음이요."'라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내 손바닥에서 뭘 보았기에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했더니, 그 노인은 대답하길, "당신 손바닥에 '큰 대(大)'자가 대궐집 대문짝만 하게 있지 않소! 한번 보쇼." 했다. 그 말을 듣고 내 손바닥을 보니 한자로 '큰 대(大)'자가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였다. 아무튼 내가 잘된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복채를 안 받는다고 해서 금방 이야기 벗이 되었고, 나는 마음이 감동되어 옆의 참새집(포장마차)에 모시고 가서 막걸리 한 잔을 대접했다. 그 노인은 나에게 계란을 몇 개 사 줘서 먹었다. 그분에게 내가 다시 한번 물었다. “내 체격에 뭘 하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복채 때문에 좋게 이야기한 거 아닙니까?” “여봐, 젊은이가 지나갈 때 무겁게 앉아 있던 내 엉덩이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졌소.” 그것은 내 양어깨를 보고 놀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어깨를 보니 어깨 밑으로 만인이 고개를 숙이며 올 것이라고 깨달아졌기에, 얼른 쫓아가서 반갑게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지금은 뭘 하느냐고 물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며 많은 생명들이 하나님을 믿게 한다고 했더니, "지금 당신이 큰일을 하고 있는데 왜 자신을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외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바삐 왔다 갔다 할 거라고 했다. 그때의 나를 두고 내가 생각할 때는 외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오늘에 알고 보니, 하나님은 그날 점쟁이를 통해서 나의 앞날을 암시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필요하면 동물을 통해서도 계시하시는데. 하물며 사람을 통해 계시하시지 않겠는가. 그 노인이 자리를 뜬 후, 나는 포장마차 주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역시 전도하기 위해서였다. 그 남자는 기독교에 빠져 있는 아내와 갈등이 심하다고 하면서, 자주 다투고 윽박질하니 결국 아내가 집을 나가 버렸다고 했다. 교회 못 나가게 핍박하니 아내는 집을 나갔고, 그 남자는 자녀들을 먹여 살리러 포장마차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의 사정을 듣고서, 내가 기도해 줄 테니 하나님을 믿어 보라고 했다. 그날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고 포장마차를 나왔는데, 얼마 후에 얘기를 들으니 아내는 돌아오고 그 남자도 같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내 사명에 대한 또 다른 계시∥
내 앞날에 대한 것은, 그날 노인을 통해 듣기 전에도 몇 가지 계시를 받았었다. 또렷이 생각나는 것은 10대 때 받은 꿈 계시들이다. 꿈에 보니 내가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내게 면담을 청하러 왔다고 하면서 끝이 안 보이게 줄을 서 있었다. 나를 만나러 오는 많고 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부산 지역까지 이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번은, 고급 세단 차들이 월명동 좁은 골짜기가 미어 터지게 밀려와서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꿈을 꿨다. 또, 어느 날 꿈에서는 내가 많은 별들이 떠 있는 하늘을 쳐다 보고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기 별'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초저녁부터 기다렸는데도 내 별은 뜨지 않았다. 그러다 새벽녘에 동쪽에서 마지막으로 별 하나가 떴다.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저 별이 네 별이다." 했다. 그 별은 해같이 찬란하게 떠올랐다. 바로 '새벽별'이었다. 그 별이 떠오르니, 다른 별들은 다 빛을 잃었다. 이 꿈을 꾸고 나서 '별 신기한 꿈을 다 꿨네.' 생각하며, 별에 해당되는 성경말씀을 찾아 읽었다.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별들로 비유했다는 것을 알고, 곧 꿈에 내가 본 별들은 '신앙의 자손들'임을 깨달았다. 또,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을 새벽별로 상징하여 말씀한 것을 통해 ‘아, 예수님과 같이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내 일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른 후에 섭리역사를 펴면서 이 별 꿈은 내 사명을 뜻하는 것임을 더욱 완전히 깨닫게 됐다. 그 노인을 만났을 때만 해도 내가 무지해서 몰랐고, 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점쟁이라고 무시하면서 그의 말은 신빙성이 없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믿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소위 ‘또라이’라고 하는 정신이상자처럼 대했는데, 그 노인 한 분만큼은 미친놈 취급을 안 했다. 내가 믿든지 안 믿든지 내 앞날을 점치며 잘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예언하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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