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 수도 생활의 하루 일과]
∥새벽 냉수 목욕의 의미∥
한겨울 강추위가 극심할 때는 대둔산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기도굴로 기도하러 다녔다. 오늘은 새벽도 채 안 되어 방구들이 내 덕을 보려고 한다. 어제 군불을 덜 땠는지, 일어나니 방바닥은 벌써 냉방이 되어 있고 아래턱이 흔들린다. 벌써 새벽 3시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살을 에는 혹독한 추위가 느껴지는 한겨울의 새벽이다. 내가 일어나 제일 먼저 갈 곳은 냉수 목욕 장소인 마당 구석의 바가지샘이다. 오늘은 너무나 추워 몸에 찬물을 끼얹기가 싫었다. 하지만 냉수욕을 하지 않고 정성을 드린다는 것은 꿉꿉한 일이다. 낮은 바가지샘은 꽁꽁 얼어 버렸다. 발로 밟아 깨뜨렸으나 깨어지지가 않았다. 꽤 두껍게 얼어붙은 것이다. 쇠망치를 가져다 깨 보니 손두께만큼이나 얼었다. 겨우 바가지가 들어갈 만큼 구멍이 뚫렸다.
아직 옷을 벗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유난히도 춥고 몸살이 날 것만 같다. 그렇지만 버릇처럼 형식적인 냉수 목욕을 하기는 싫었다. 내가 정한 법대로 비누칠을 하여야만 했다. 그 비눗물이 깨끗이 지워지기까지 마구 바가지로 물을 퍼부었다. 비눗물이 겨우 닦인다. 오늘은 왠지 내 육신이 반항을 한다. 추운 것보다도 너무 진절머리가 나고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아니 건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반항하는 그 항의 소리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이 기도를 받고 정성을 받는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365일인데. 그것도 봄, 여름, 가을도 아닌 이 혹독히 추운 겨울날에... 정말 괴롭다. 이렇게 이를 악물고 수도 생활을 하며 가야 되는지..' 하는 내용이었다. 내 육신은 불평 속에 결국 포기를 하려 한다. 도저히 더 이상 못 하겠다는 것이다. 영혼만 살기 위해 육신을 이렇게까지 학대해야 되느냐는 식이다. 자포자기가 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내 영혼도 심각하여 쪼그리고 않아 있는 초라한 내 육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영혼도 육신을 이해는 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조금도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영혼의 집념이 있었다. 내 육신은 발가벗은 채 슬슬 불어제치는 새벽바람까지 맞으며 얼어붙은 샘 곁에 초라하게 쪼그리고 않아 있다. 육신이 독이 올랐는지, 아니 모든 것을 체념해 버렸는지 넋이 빠진 듯 그저 앉아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내 영혼이 설득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만 죄를 지었단 말인가? 왜 나만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하고 영혼에게 푸념한다. 내 영혼이 난처해했다. 하지만 몸부림치지 않고서는 사망의 골짜기를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내 영혼의 각오와 집념은 변함이 없었다.
내 영혼이 육신에게 말하길 “니 이리다 날이 새어 벗은 몸이 다 드러나 망신당하겠다.” 하였다. 이에 “수치고 망신이고 난 헷갈린다.”라고 육은 발한다. “아! 니는 곤고한 몸이로다. 이 괴로운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어 문제를 해결할 자 있으랴.” 하며, 행여 오늘 수치를 당할지라도 이 문제가 풀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순간 나에게 하늘의 영감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깨끗한 산 제사로 드려라. 이는 네가 드릴 영적인 예배이니라." 맥이 빠져 포기 상태에 있던 육신은 하나님의 신의 능력을 입은 듯 벌떡 일어나 그 얼음덩어리가 덜그럭거리는 찬물을 몇 바가지 떠서 머리에서부터 내리부었다. '영혼만 깨끗이 한다고 받으시는 것이 아니구나. 몸을 깨끗하게 하고 닦는 것이 꼭 필요하구나.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이 제사로 받지 않으시는구나.' 하고 육신이 깨닫게 되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있다. 육신은 내 영혼보다 더 미친듯 좋아하며 내일 아침에는 때까지 밀겠다고 다짐했다. 내 영혼은 샘 곁에서 그 모습을 보고 더 크게 자신을 반성하며, 나도 저 육신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더욱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영적인 곤고함과 고통을 해결할 수가 있다!'하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다릿골 기도굴로 가서 날이 새도록 철야를 하겠다고 내 육과 영은 함께 다짐했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깨닫고 인생을 걸겠다고 다짐했듯 나는 새로운 또 하나의 부활된 모습을 보였다. 곧바로 냉수욕을 마치고 나는 날듯이 방으로 들어가 새벽 기도를 드렸다. 나와 가정, 민족, 세계, 그리고 모든 인생들을 위해 기도하며 흐느껴 울었다.
∥기도하고 전도하다 보면 하루해가 기울어∥
어느새 내 방 안을 겨울 햇빛이 밝게 비추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는 아버지, 어머니, 작은형, 영자, 규석, 범석, 용석, 그리고 나까지 여덟 명이 모였다. 시래깃국에 수수밥, 그리고 밥에다 고구마 몇 개를 얹어 놓은 식사이다. 반찬은 김치가 전체 몫을 했다. 식사가 끝나면 모두 할 일이 태산 같다. 겨울이라 할 일이 없는 것 같아도 그 지겨운 인삼밭의 거적 엮기를 해야 한다. 특히 우리집의 ‘상머슴’이라는 칭호가 붙고도 남을 분은 어머니셨다. 사랑방에 들어가면 온종일 나올 줄을 모르신다. 우리는 후다닥 소낙비같이 일을 하나, 어머니는 기계보다도 더 무섭게 꾸준히 일하시던 그 모습이 '철인' 같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아버지는 동네 마을에 놀러 가시기도 하고, 때에 따라 거적 엮는 일을 하셨다. 그래도 우리보다는 더 많은 일을 하셨다. 일하시면서 가끔 천둥 번개 치듯 소리 지르며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시곤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런 소리를 내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고함치는 목청, 이에 투덜대며 반항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 이제는 듣고 싶어도 녹음을 해 놓지 않아 들어 볼 수 가 없다.
집안일이 그렇게 바빳지만 나는 틈만 있으면 빠져나가려고 했다. 육신도 지겨웠지만, 무엇보다 내 영혼이 건딜 수가 없었다. 내 영과 육은 새벽 3시부터 하루를 위해, 아니 앞날을 위해 냉수 목욕으로 준비하고 닦고 깎아 놓았는데, 겨우 인삼 거적이나 엮는 일을 하게 되니 참 한심스러웠다. 그러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항상 지겨운 일, 고통스리운 일이었다. 결국 마음의 몸부림을 치며 나는 그 험한 곳을 빠져나와 산으로 갔다. 다릿골 기도굴이다. 나의 천국이다. 찬송을 하니 내 마음이 날아가고 내 육신도 땅에서 붕 뜨는 기분이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같은 찬송가를 많이 불렸다. 서른 번씩은 불러야 속이 시원했다. 성경은 그때그때 감동되는 대로 읽으면서 잠재의식의 세계로 들어갔다. 감동의 시간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기도에 들어가면 깊은 밤이 일순간에 지나가고, 일주일도 의식 없이 지나갔다.
깊은 진리를 깨닫고 달려가는 곳은 생명들이 있는 곳이었다. 전도하기 위해 말씀을 외치는 것도 끝이 없고, 가르치는 것도 역시 끝이 없었다. 말씀의 불이 붙어 이곳저곳 다니며 외치다 보면 긴긴 하루해는 벌써 기울어 땅거미가 진다. 집에 들어가면 밥을 먹으니 좋지만 또 인삼 거적 엮는 일을 해야 되기에 아예 먹지 않고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에겐 편했다. 그래서 기도굴로 곧바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땐 밤이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기도를 하면서 깊은 경지에 들어가 세상을 쳐다보면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것이 내 젊은 날 수도 생활의 하루 일과였다. 몸부림의 삶이었다.
*이글은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온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선생님의 지난날 삶의 행적을 통해 그가 외치고자 했던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정명석 선생님의 저서인 ‘나만이 걸어온 그 길’을 재편집한 것으로써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저작권자 ⓒ 제이에스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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