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걸어온 그 길(7)-정명석 선생님의 위대한 삶
∥생각이 솟는 곳, '독수리봉∥
대둔산 전체 풍경 3분의 2를 품은 골짜기가 용문골이지만, 그 골짜기에 들어가서 풍경을 봐도 산과 절벽에 가려 반 정도밖에 경치가 안 보인다. 골짜기로 올라가서 전설 어린 좁은 바위틈 샛길을 지나 두 번째로 나오는 바위 문을 지나면, 좌측의 작은 암자가 바로 손에 닿는다. 암자의 손바닥만 한 뜰을 밟으면서 우측으로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바위 절벽이라, 발바닥이 그야말로 쥐가 날 정도로 근질근질하다. 이런 곳을 지나서 20m쯤 더 올라가면 절벽 위에 텐트 하나 칠 만한 평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칠성봉 쪽을 쳐다보면 이 골짝의 풍경이 아주 잘 보이고,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봉우리들이 가깝다. 바로 이곳이 내가 기도하며 수도 생활을 한 중심지였다. 또, 여기서 10~20m 정도 바위 절벽을 따라 돌아가면 독수리 머리같이 우뚝 솟은 봉이 나온다. 거기는 6분의 1평도 안 되는 넓이로 혼자 겨우 앉거나 설 수 있는 공간이다. 한 사람이 무릎 꿇고 앉으면 더 이상 공간이 없다. 둘이 올라가도 위험하다. 좌우가 100미터 절벽이기 때문에, 서로 봄끼리 걸려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낙상 사고로 죽는다. 혼자 있어도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 서 있으면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 있다. 그래서 바다 전복같이 바닥에 착 붙어 않아서 좌우 바위를 손으로 꽉 잡아야 안 날아간다.
독수리 목같이 쭉 뻗은 바위 절경이 끝나는 곳에 솟은 이 봉은 꼭 독수리 머리와 같다. '독수리' 하면 성경 이사야서 46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동방의 독수리를 보내어 나의 모략을 이룬다."라고 했기에, 이 봉에는 뜻이 있기도 했다. 어느 날 이곳에서 기도할 때 독수리 형상을 보게 하셨다. 눈을 뜨고 서서 좌우로 보니 독수리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것같이 훤히 보였다. 그리 고 독수리 머리 봉 앞에 '하나님 바위'가 보인다. 높이가 150미터나 된다. 나는 대둔산이 관광지가 되기 전부터 다녔는데, 특별한 기도를 할 때 이곳을 찾았다. 성경의 깊은 뜻을 깨달으려 할 때나, 혹은 심정이 괴롭고 고뇌가 몰아닥칠 때, 혹은 집 근처 가까운 곳에서 기도하는데 인기척 소리가 난다든지 낮에 사람들의 눈에 띄게될 때, 혹은 집에서 나를 본격적으로 찾으러 다닐 우려가 있을 때에는 위험한 환경을 무릅쓰고 의미 깊은 독수리 머리 봉으로 올라갔다. 독수리가 바위 절벽에서 산다더니 내가 그와 같았다. 예전에는 아는 자만 이 봉을 다녔다. 위험하고 외져서 일반 사람들이 못 찾아가는 곳이다. 산을 잘 타는 자라도 위험한 코스라서 몸에 소름이 끼치고 발바닥과 머리끝에 전류가 흐른다. 직선 절벽 100미터 코스를 손잡이 없이 바위를 잡고 거쳐 가야 된다. 독수리 머리 봉에 갈 때 그곳이 최고로 위험하다. 지금은 금지해 못 가게 막아 놓았다. 그곳에 가고 싶을 때 다른 길을 이용해서 다니나, 그 길도 역시 마지막 독수리 봉에 오를 때는 극히 위험한 곳을 거쳐야 된다. 100미터 이상 되는 절벽이니 한번 떨어지면 정말 살 수가 없는 곳이다. 무작정 가서는 안 될 곳이다. 그때 나는 신에 사로잡혀 다닐 때라 그렇게 위험한 줄 모르고 다녔다. 요즘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극히 조심한다.
당시의 내 차림은 작업복에 실장갑을 끼고 방한모를 썼으며 검은 운동화를 신었다. 내가 그때 가진 것이라고는 성경 한 권과 찬송가 책 한 권, 그리고 노트와 펜이 전부였다. 텐트라든지 거처할 곳은 입산해서 하산할 때까지 거의 없었다. 텐트는 여름에 딱 한 번 친 것으로 기억날 뿐이다. 깔판, 방석으로는 가랑잎이나 검부러기 마른 것을 사용해 깔고 앉거나 그 위에 엎드려서 생활했다. 온몸이 아프고 쑤셔 댈 때면 맨손체조를 하고, 무서울 때면 고함을 지르면서 산속의 무서움을 몰아내기도 하였다. 호랑이같이, 사자같이 소리를 질러 산을 울리고 나면 두려운 마음이 물러갔다. 무엇보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면 심적 두려움이 물러갔다.
이곳에서 용문골 바위 절벽을 바라보면 한눈에 보이고, 또 대둔산 구름다리 쪽까지 거의 다 보이며, 태고사 쪽으로 뻗은 절경도 너무 가깝게 보인다. 용문골 칠성봉 일대와 태고사 상여봉이 다 보이는데, 그쪽으로 산의 바위 절경이 웅장히 뻗어 있고 암벽등반 코스도 보인다. 그러니까 내가 앉은 곳, 독수리 머리 부분에서 뻗어 올라가서 칠성봉과 태고사 쪽으로 독수리가 날개를 펴듯이 좌우로 기암절벽이 펼쳐져 있다. 거기 까마득한 바위 절벽 위에 오랜 세월 동안 커 온 싱싱한 소나무가 있다. ‘천년송’이라 불리는 걸작이다. 이 소나무가 나 있어, 절벽을 내려다볼 때나 오르내릴 때 현기증을 막아 줘서 좀 안심이 되기도 했다. 40여 년 전 기도하러 다닐 때도 이 소나무 크기가 그만했는데, 지금도 똑같다. 어느 도벌꾼이 나무 중심을 베어 가서 옆 가지로만 컸는데, 그런대로 풍치를 이루고 있다. 이 소나무도 나와 참 오랫동안 사귄 친한 애인이다. 독수리 머리 바위는 생각이 솟는 곳이다. 하나님 생각, 성자의 생각이 솟아나는 곳이라고 깨닫게 해 주셨다. 그곳에서 기도하게 성령님이 인도해 주셔서, 제일 처음 기도했던 지금의 용문골 칠성봉 전망대에서 그곳으로 기도 장소를 옮겼다. 이때부터 '독수리봉'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후에는 왜 독수리로 깨우쳐 주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성장에서 독수리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메시아를 상징한다. 공방의 독수리를 보낸다는 예언을 두 가지로 깨닫게 하셨는데, 하늘로는 성자요, 땅으로는 그의 육이 되는 자를 보낸다 함이다.
∥잠과 밥을 멀리하고 깊이 기도하다∥
독수리봉은 용문골 전망대에서 제법 떨어진, 가려진 곳에 있어서 사람들은 거의 모른다. 사람들의 눈에 안 띄고 등산객과 나무꾼들의 눈에서 멀어지니 기도할 때도 의식이 안 되고 좋았다. 바위 바닥에 붙어 그대로 딱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했다. 그런데 절벽 위라 가장 의식되는 것은 기도하다 혹시 졸면 실수하여 떨어질까 함이었다. '나도 모르게 잠결에 평지 바닥으로 생각하고, 혹은 방으로 의식하고 깜깜한 밤중에 일어나 걸어 나가면 어쩌나? 절벽인데..,' 하는 것이었다. ‘기도해도 실수하면 일순간 죽는다. 잠자면 무의식 가운데 행하여 죽는다.’라는 생각이 가장 우선적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성자께서도 "졸면 죽는다. 인간은 잠에 약해서 자기도 몰라. 내가 돕지만 네가 자면 못 말려." 하셨다. 마귀가 문제가 아니었다. 잠과의 싸움이었다. 마귀가 나를 잠들게 하려고도 하겠지만, 단순히 그 작전이 아니라 나를 잠들게 하여 무의식 가운데 행하게 해서 절벽에 떨어뜨려 굴릴 것임을 나는 100% 알고, 마치 눈을 뜨고 기도하듯 정신의눈을 뜨고 기도했다. 배를 얼게 하는 추위, 배고픈 것과 비교가 안 되는 잠과의 싸움이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첫째는, 먹지 않으니 배가 고파 잠이 안 왔다. 둘째는, 몸이 얼고 찬바람이 살을 파고드니 잠이 안 왔다. 셋째는, 돌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니 아파서 잠이 안 왔다. 이런 고통이 죽음을 몰아내는 데 수호신이 되었다. 고생돼도 생명길이 되었다. 또한, 이곳은 바위 절벽이라 산머루나 다래가 없었다. 배고파서 눈을 크게 뜨고 아무리 봐도 포도 한 알도 없었다. 독수리봉 지역은 소나무도 살아가기 힘든 지역이었다. 조금 아래 용문골 전망대 근방에는 머루와 다래가 있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서 많이 따 먹고 새들도 따 먹어 금방 없어졌다. 그나마 바위 절벽 밑, 호랑이가 나타났던 지역에는 흙이 있어서 포도, 머루. 다래들이 꽤 열려 거기로 가면 따 먹을 수 있었다. 내가 대둔산에서 20년 가까이 그렇게 기도했어도 밥을 싸다 먹으면서 기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빵을 몇 번 가지고 가서 먹은 적은 있었다. 기도를 하러 다녔으니 기도의 목적을 행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밥을 못 먹어 못 견딜 때도 한 번도 누가 밥을 줘서 먹은 기억이 안 난다. 밤에 옆의 암자에 한 번 들어가고 바위 밑의 무당집에 한 번 들어간 기억이 나는데, 무엇을 먹은 기억이 확실히 나지 않는다. 물도 먹으려면 멀고도 먼 계곡까지 오르내려야 했다. 흐르는 물이 샘이었다. 하루에 한 번, 어느 때는 이틀에 한 번씩 물 먹으러 다녀왔다. 성자께서는 "깊이 기도하면 영에 의해 나와 일체 되어 신이 되니 다스리게 된다. 깊이 기도하면 돌 위에 있는 아픔도 사라지고 배고픔도 사라지고 추운 것도 사라지고 내가 함께하여 모두 다스려지고 나의 말씀을 잘 듣고 배우게 되어 내 원하는 목적을 이룬다."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의 도(道), '주와 일체'∥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독수리봉에서 한 기간을 기도했다. 하나님은 독수리봉을 또 하나의 수도 장소로 삼고 나를 이곳에서 훈련시키시고 깨우쳐 주셨던 것이다. 대둔산 용문골의 '독수리 좌우 날개같이 펼쳐진 기암절벽'을 보이시며 "좌우에 날 선 검, 나의 시대 말씀을 받아 전해야 된다." 하셨다. 그리고 독수리 목 쪽에 서 있는 '검으로 탁 끊은 것같이 가운데가 찢어진 바위 절벽'을 보이시며 "말씀의 검이 있어야 쪼개어 분별한다. 완전한 말씀을 받기까지 닦아라." 하시면서 먼저 깊은 기도를 하게 하셨다. 영을 성장시켜 차원 높은 시대 말씀을 받을 단계에 이르기까지 기도하기를 원하셨다. 나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듯이 대둔산 용문골 독수리봉과 지금의 구름다리 봉우리를 다니면서 기도하여 시대 말씀을 받았다.
내가 기도하기 위해 독수리봉을 오르내릴 때, 성자는 늘 옆에서 지도하시길 “천천히, 바위를 나 붙잡듯이 꼭 잡아라.” 하셨다. 또 어지러우면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고, 자신이 없을 때는 움직이지 못하게 하셨다. 바위를 뒤로하고 앞을 보고 산을 타면 더 공포를느낀다. 어느 날에는 다리가 떨리고 바위에 놓은 발이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고 성자를 불러 됐다. 손으로는 손톱이 일그러지도록 바위를 움켜잡았다. 이곳은 바로 독수리봉 소나무 옆 코스다. 100미터 절벽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성자께서 나에게 감동을 주어 "내가 네 뒤에서 안고 있으니 당황치 말고 발바닥 발끝을 바위절벽에 스치면서 내려라." 하여 그렇게 내리고, "손도 떼지 말고 바위에 대고 손바닥으로 딱 움켜서 옮겨라." 하여 그대로 함으로 겨우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성자는 "항상 이같이 절벽에서 바위 잡듯 네 마음으로 나를 잡아라." 하셨다. 기도를 깊이 하며 영계에 들어가서 듣는 성자의 말씀보다 실전에 데려다 놓고 교육하시니 더 가슴과 골수에 들어왔다.
그날은 ‘주와 일체’라는 생명의 도를 깨닫고 내려왔다. 그 코스를 뒤로하고 보다 안전한 곳, 제1코스에 내려와서 주저앉아 긴장으로 굳어진 봄을 풀었다. 제1코스 기도 장소인 현재 칠성봉 전망대는 넓으니 내 집, 내 방 같았다. 지금의 전망대를 짓기 전이었다. 그곳에서는 운동으로 몸을 풀기도 하고, 다리 운동도할 수가 있었다. 거기서는 독수리봉에서 받은 말씀을 머리로 정리하고 더 깨닫는 시간을 보냈다.
*이글은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온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선생님의 지난날 삶의 행적을 통해 그가 외치고자 했던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정명석 선생님의 저서인 ‘나만이 걸어온 그 길’을 재편집한 것으로써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저작권자 ⓒ 제이에스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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