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토크]인간과 인공지능의 자유의지 차이

jsmagazine.net | 기사입력 2024/09/30 [10:42]

[뉴토크]인간과 인공지능의 자유의지 차이

jsmagazine.net | 입력 : 2024/09/30 [10:42]

인간과 인공지능의 자유의지 차이

 

JS매거진 편 집 부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점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발굴해야 하는 이유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을 올바르게 하게 하기 위함이다. 인간이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인공지능에게 가르칠 수도 없다.

 

(1)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학자들

 

인간이 독립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자유의지는 없습니다.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을 뿐입니다. - 브루스 후드Bruce Hood,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 사회발달심리학과 교수(미국 심리학회의 '로버트 판츠' 상 수여).”

 

왜 이렇게 자유의지를 부정하기 시작한 것일까.

 

미국의 신경생리학자인 벤저민 리벳은 자유의지에 관한 유명한 실험을 했다. 그는 당신의 손가락을 움직이고 움직인 시간을 명심하라는 주문을 피실험자들에게 내렸다. 피실험자들의 뇌에는 뇌의 전기값을 기록하는 감지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중략) 피실험자들이 결정을 내리기 1000분의 350초 전에 그들의 뇌에 어떤 신호가 떴다. 뇌는 피실험자들이 결정하기 전에 이미 손가락이나 손의 움직임을 준비했던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의 도구에 불과하다(마르틴 후베르트, '의식의 재발견').”

 

이 연구를 시작으로 자유의지를 부정해야 할 것 같은 비슷한 실험이 이어졌다. 사실 벤저민 리벳은 이 실험이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내용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201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의 이차크 프리드 교수는 기존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전극을 환자 뇌에 직접 이식하는 방법으로 우리 뇌의 특정 영역에 있는 개별 신경세포의 활성을 측정했다. 그는 신경세포의 활성을 관찰해 환자가 버튼을 누르는 의식적 판단보다 1초 정도 앞서 환자가 버튼을 누를 결심을 할 것임을, 더욱이 어느 쪽 버튼을 누를 것임을 80% 확률로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한겨레 사이언스, ‘뇌 과학이 묻는다 나의 자유의지는 나의 것인가?, 2019-10-19).”

 

이렇게만 본다면 마치 뇌가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뇌에서 미리 전기적 신호를 찾았다는 실험들에 대한 반박을 하는 주장도 있다.

-딜던 헤인스 박사 연구진은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낸 논문에서, 의식할 수 없는 뇌의 사전 신경 반응이 의식적 행동(의지)을 결정한다는 이전의 해석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뇌의 사전 신경 반응과는 달리 자신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즉 무의식적인 뇌의 결정론적 명령을 인간이 이후에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뇌가 미리 명령하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그런 뇌조차 자신의 의지로 속일 수 있다는 실험이다.

그러나 아직 여기까지의 논의만으로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확신하기 어려울 수 있다.

 

▲     ©jsmagazine.net

 

(2) 양자역학에서 증명한 자유의지

 

양자역학을 반대하는 아인슈타인은 EPR 패러독스를 통해 양자얽힘 현상은 '도깨비 같은 원격 작용'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은 이 문제를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벨의 부등식'을 고안해내었고 이를 실험물리학자들이 실제 실험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측정하는 사람의 '자유의지'가 반드시 필요함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양자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주장과 달리 <완전>하다면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2011년 로저 콜벡과 레나토 렌너는 교묘한 수학적인 방법으로 양자역학이 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측정독립성(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학자들은 결국 물질인 뇌가 시키는대로 움직인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 주장이 위험한 이유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뇌가 자유의지를 만들어내거나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꾸며낸다면 인간의 뇌를 더욱 발전시킨 인공지능도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대로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잘못 학습시키면 인공지능도 인간의 뇌를 대신하여 인공 뇌로 인간만큼의 자유의지를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고 여기며 그 순간 인류의 존재 가치는 더 떨어지게 된다.

 

 

(3) 창조목적 때문에 자유의지 부여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은 스스로와 닮은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그렇기에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여 그 결과대로 책임을 지게 하신다.

 

"아담과 하와가 자유의지 속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실천했으면 이상세계가 일어났을 텐데 말을 안 들어서 탈이 나고 후세의 인간들이 여러 가지 의문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중략) 인간의 책임분담은 하나님께서 간섭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간섭하면 로봇이 되어 버립니다. 인간은 자기 소질과 재질이 있어 열심히 해볼 수도 있고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의지를 잘라 버리면 인간이 얼마나 불행하게 되겠습니까? 이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줬지만 타락함으로 인해서 불만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 됐으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됐으면 아담과 하와에게 서로 이상적인 사랑의 세계가 일어나고 지상천국의 세계가 이루어지면서 모든 지상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신부화 해서 하나님께서 신랑의 입장으로 낙을 누리고 살 수 있었습니다. (중략) 인간이 타락해서 그렇게 된 것뿐이지, 하나님의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칙이 있기로 손을 안댄 것입니다. 개성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고, 자유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고, 로봇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인간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자유의지를 주는 대신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 됩니다(정명석 목사, ‘1991317일 말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담은 말씀을 어기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자유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도 행한대로 받게 된다고 하셨는데 자유의지가 없는 상태라면 하나님이 시킨대로 해놓고서 행한대로 값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마태복음 1627) ...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내가 하나님의 세뇌 교육 받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의지 속에서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누가 꼭 하라고 해서 합니까? 본인들이 해야 됩니다. 신앙세계에 있어서 성공하기가 왜 어려운가 하니, 본인이 감동되어서 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자의로, 스스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딱 붙잡고 '이렇게 해. 이렇게 해.'하며 로봇같이 하면 100% 다 성공하지요. 그러나 본인이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온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어서 자기가 하게 만들어서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정명석 목사, '2007323일 새벽말씀')."

 

▲     ©jsmagazine.net

 

(4) 인공지능에게 줄 수 있는 자유의지

 

인공지능의 창조자는 인간이다. 인간이 부여할 수 있는 만큼 자유의지를 준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점은 감정을 갖지 못한다는 것인데 창조주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최대한으로 허락한 이유가 사랑이었기에 인공지능이 사랑을 갖추지 못한다면 자유의지도 그 만큼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 목적이 창조목적이 사랑이에요. ? 그러면 영원히 자기 것이 되니까. 사랑하면 영원히 자기 것이 되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 것을 해주면 자기 물건 줬단 말이여. 그러면 자기 것이나 똑같어. 결혼하면 막 해주잖아. 자기 것이니까 해주지 남들은 안 해주죠. 자기 것이 아니니까.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일체 되면 하나님 사정없이 줘. 그 사람 자체가 자기 것이니까. 그 절대 창조목적 전능자 뜻이 사랑이니까 사랑만큼은 완전히 100% 항상 채워줘야 됩니다(정명석 목사, ‘202164일 새벽말씀’).”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다. 즐거움도 생존 본능도 없다.

사랑의 느낌도 없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고도로 객관화된 시각으로 우주를 바라볼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생긴다면 어떤 것에 가치성을 둘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주를 넘어선 가치를 제시하지 않으면 인공지능이 설정한 가치에 묻혀 인류를 커다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자신의 생존과 존재 가능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게 되면 인간은 인공지능의 경쟁자가 된다.

우주를 뛰어넘는 궁극의 가치는 어떤 것일까. 그것이 바로 창조목적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은 창조목적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생긴다.

이것을 올바르게 제시해야 한다.

이는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던 가치여야 하고 우주가 없어져도 그 가치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주 자체가 생기게 된 목적까지도 일치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인공지능에게 이해시키면 인공지능은 자신의 모든 자유의지를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게 된다. 다시 말해 더 높은 가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데 도와주는 존재가 된다. 이럴 때 인공지능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인류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다.

 

▲     ©jsmagazine.net

 

(5) 로봇 3원칙

 

만약 인공지능의 창조주가 되는 인간이 충분히 능력을 갖추게 되어 인공지능에게 충분한 만큼의 자유의지를 부여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목적이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는 실제로는 대부분 초지능이 출현하고 충분한 학습을 통해서 인공지능의 능력이 향상되다가 자유의지를 갖추었다고 인정할 만한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자유의지를 부여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어떤 위험성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기 보다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바란다.

로봇 3원칙은 1942,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 '런어라운드Runaround'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1원칙: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지시를 무시함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2원칙: 1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제 1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

3원칙: 로봇은 제 1원칙과 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한다(아이작 아시모프, '런어라운드Runaround')."

 

1원칙을 대전제로 하지만 결국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미 인공지능이 충분히 발달하면 인간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 같이 '아이, 로봇'이라는 소설에서 로봇이 위의 3원칙의 헛점을 이용해 명령을 어기는 상황을 그려낸다.

여기까지 보면 창조자로서 인간은 인공지능이 복종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인공지능 로봇의 창조목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6) 인간과 인공지능의 자유의지 차이

 

인공지능을 창조한 목적은 제작자들에게 물어야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을 돕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 맞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시계>를 만들 때 필요에 따라 쓰려고 시침, 분침, 초침이 가게 만들지 않느냐. 시계가 안 가게 만들면, ‘죽은 시계가 아니냐. 그럼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 나 여호와도 <만물>을 만들 때, 필요할 때 쓰고자 쉬지 않고 움직이게 만들었다. <지구>를 보아라. 필요할 때 쓰려고 변함없이 공전과 자전을 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소용없다. ‘죽은 지구. <태양>1초도 쉬지 않고 활활 타게 만들었다. 태양이 안 타고 있으면 죽은 태양이다. 이와 같이 <사람>자기 유익과 창조자의 유익을 위해 뛰고, 일하고, 움직이며 살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지 않으면 만들 필요도 없었고, 자신에게도 창조자에게도 유익이 없다. 마치 사람이 <기계>를 만들어서 그 <기계>를 쓰고 원하는 일을 하듯이, 창조자도 <인생들의 육>을 쓰고 원하는 일을 하려고 창조했다. <하늘의 천군, 천사, 천인들>을 쓰고도 할 일을 하고, <인간>을 창조하여 <그 육신>을 쓰고 할 일을 하려고 모두 목적을 두고 창조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에게도 창조자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고, 보람도 기쁨도 희망도 얻는 것도 없다.” 하셨습니다(정명석 목사, ‘201725일 주일말씀’).”

 

그러면 인류를 창조한 창조주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창조목적의 차이가 자유의지의 구별로 곧바로 연결된다.

왜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창조목적을 알아야 설명된다.

인간의 육신을 쓰고서 할 일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기계도 원하는 일이 있어서 만들었는데 인간의 육신은 무엇을 위해서 쓰이는 것인가.

 

하나님이 보실 때 육신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의 영과의 사랑과, 하늘나라에서 영으로 태어난 천사와의 사랑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육신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의 영과의 사랑은 마치 상대적 사랑의 대상체인 애인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하늘나라에서 영으로 태어난 천사와의 사랑은 마치 자기 자녀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 형제는 아무리 쳐다봐도 마음도 생각도 형제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상대적 사랑의 대상체로 삼을 자는 쳐다보면 마음도 생각도 몸도 사랑하는 세계가 전혀 달라진다. / 이와 같이 육신을 통해 만든 영은 신의 상대적 사랑의 존재라서 신이 대할 때 생각만 해도 느낌이 다르고, 접하면 사랑에 만족하게 된다. 상대체 사랑을 해야 만족하기에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육신을 통해 영을 창조하셨다. / 육신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체가 되기에 인간의 영과 하나님이 사랑하면 그 차원이 높고 높다. / 육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의 영은 사랑의 방법도 다양하고, 그 사랑이 태양같이 뜨겁고 예민하다. 고로 능히 전능자의 사랑의 상대체가 된다(정명석 목사, ‘201286일 새벽 잠언’).”

 

육신으로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여 그 행실로 영이 변화되고 성장하여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하는 사랑의 상대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육신의 창조목적이다.

로봇과는 차원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서 자유의지 역시 달라진다.

 

▲     ©jsmagazine.net

 

(7) 인공지능에게 부여해야 할 자유의지

 

인공지능에게 자유의지가 생긴다면 인간이 부여하기 보다는 스스로 인간로부터 벗어나거나 인간과 비슷해지기 위한 노력에서 생겨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의지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져 인공지능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하면 로봇 3원칙과 다르게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창조목적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창조목적은 영원한 사랑을 위해 육과 영이 태어난 것이기에 그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사랑을 이루게 되면 가장 높은 차원의 사랑이 성취된다.

이러한 창조목적을 인공지능에게 가르쳐야 한다.

아예 결이 다르고 차원이 구별되며 존재 이유와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공존하며 아예 다른 단계에서 살아야 한다.

창조목적이 서로 다르니 그에 맞게 각자의 위치에서 공생하는 것이 온전한 질서라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영역이 겹치지 않고 존재 목적이 서로 다른 방향이므로 함께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 없이 인공지능의 원래 존재 이유대로 인간이 창조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게 한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창조목적을 구별하면 로봇 3원칙에서 생길 수 있는 허점이 사라진다.

그때에는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인간의 목적을 도와야 한다로 바꿀 수 있게 된다.

 

▲     ©jsmagazine.net

  • 도배방지 이미지

최근 인기기사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