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의 한계[1]

1부 침묵하시는 하나님인가

jsmagazine.net | 기사입력 2024/06/16 [21:15]

전능하신 하나님의 한계[1]

1부 침묵하시는 하나님인가

jsmagazine.net | 입력 : 2024/06/16 [21:15]

<전능하신 하나님의 한계>

 

JS매거진 편 집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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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면서 한계라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라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전능자 하나님에 대해서 한계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예수님 앞에서 돌을 들었던 유대인들처럼 따져 물을지도 모른다.

 

(마태복음 21: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하지만 감히 전능한 신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부풀려 말하다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의 모습으로 변질시켜버리면 더 큰 문제가 된다.

이러한 신은 인간을 실망시키고 오해하게 만들어 멀어지게 만든다실재하지 않는 신이기에 버림받고 신은 죽었다며 인간을 신의 살인자로 만들기까지 한다.

 

1부 침묵하시는 하나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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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에 대한 원망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면 왜 침묵하시는지 묻는 자들이 있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목을 참수한 절두산의 비극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

어느 여류 소설가는 교통사고를 당한 젊은 의대생 아들은 왜 데려가셨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착하고 앞으로 많은 생명을 살릴 자를 어찌 하늘로 그렇게 빨리 데려가셨느냐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고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도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선한 자들을 두고서 전능한 하나님이 아무 말도 없으시냐고 눈물로 호소하는 자들이 있다.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배를 붙잡아 주셨으면 내 아이가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한탄하는 부모에게 무어라 말할 것인가.

하나님은 그때에 왜 가만히 계셨는지 물을 것인가.

 

▲ 고뇌하는 예레미야 / 이미지, Daum     

 

(2) 하나님은 항상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은 전능하다고 창작되어서 신비한 일들을 자기 마음대로 일으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성경의 신 하나님은 언제나 전능하지 않다.

적어도 우주를 창조하실 능력을 가지셨지만 인간과 함께하는 영역에서는 그만큼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으신다.

그러니까 전능하시지만 그 전능함을 언제나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것이 맞다.

다만 인간과 함께 할 때는 그렇지 않다.

아빠가 아기를 안을 때 팔 근육의 최대 힘을 다 쓰면 갈비뼈가 부러진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과 함께하기에 처음에 이루지 못하고 두 번째, 세 번째에 이루시기도 한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은 스스로 첫 번째에 꼭 행하십니다. 그러나 약한 인간과 함께 행하는 것은 항상 인간이 준비가 안 되고 몰라서 첫 번째에 못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여기서 끝내지 않으시고, 꼭 두 번째 기회를 주어 원통해하고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며 뼈저리게 깨닫게 하고 준비하게 하면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연단하고 단련하여 목숨 다해 기필코 하게 하셨습니다(정명석 목사, '2016612일 주일말씀')."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약한 인간과 같이 행하면서 처음부터 완전하게 이루지 못하실까.

 

"하나님도 창조하신 목적을 스스로 이룰 수가 없다. 인간과 함께 이루는 것이다(정명석 목사, '200368일 새벽말씀')."

 

같이 해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처음부터 절대자로 완전하게 만들어 놓으면, 자기가 만들어서 된 것이 아니니까 삼위일체의 사랑도 제대로 모르고, 그 사랑의 가치도 제대로 모르고, 삼위일체의 심정도 모릅니다. 그러니 같이 사나 마나 정도 없고 뜻도 없습니다. 그냥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로봇과 같습니다. ‘같이만들어야 됩니다. 삼위일체와 우리가 같이만들어야 됩니다. 우리 이 땅의 구원자의 말씀을 듣고서 절대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절대 믿고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도 완전하게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우리 도 절대적인 영으로 완전하게 만들어져서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체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닮기 위해서 그 마음과 정신과 생각을 받아서 행함으로 제2의 하나님적 존재가 되고, 절대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게 하셨습니다(정명석 목사, ‘201347일 주일말씀’).“

 

창조 목적 자체가 인간을 사랑의 대상체로 삼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스스로 혼자서만 이루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창조목적은 인간이 그 대상체이기 때문에 인간이 완전한 사랑을 드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3) 인간 책임과 하나님 책임

 

기존 기성 기독교인들은 그저 믿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두라고 믿게 만든다.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바울의 메시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통한 구원만을 강조하다가 인간의 책임은 전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인식시켰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메시지를 믿는 것뿐입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자들입니다(마틴 로이드 존스, '십자가').“

 

이것이 기성 기독교인들의 입장이다. 그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의 가르침에만 집착한 결과다.

 

하나님에 관해 연구하지 않으면 모르니, 자기가 할 일인데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하며 무조건 하나님께 다 맡기고 자기는 안 합니다(정명석 목사, ‘2024317일 주일말씀’).”

 

같이 해야 한다. 육을 가진 인간이 할 일과 영이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함께 할 것도 있고 따로 할 일도 있다.

 

하나님은 지구 세상이나 천국 세계에서 일하시되 하나님의 것만 하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일을 절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일수록 돕습니다(정명석 목사, ‘2024317일 주일말씀’).”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전히 다 해야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나머지를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이루셔서 전체를 합쳐보면 100%가 되어 뜻이 이루어진다.

 

절대자 하나님, 성령, 성자, 메시아 예수님, 시대마다 보낸 구원자가 다 해 준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자기 구원의 절대자이다. 책임자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정명석 목사, ‘2024317일 주일말씀’).”

 

인간이 해야할 것은 인간이 스스로 최선을 다해 이뤄야 한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신다. 감동을 주시고 미리 만물로 계시를 주시지만 육신을 가진 인간은 쉽게 이러한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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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계를 정하셨다

 

"하나님은 예리하신 하나님, 정밀하신 하나님, 풍성하신 하나님, 한계 이상을 가지 않으시는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정명석 목사, '1996526일 주일예배')."

 

한계 이상 가지 않으시는 이유는 살리기 위함이다.

 

"보면 자기가 조금 다른 길로 가기 때문에 '이 길로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길로 가는 사람은 계속 그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법칙이란 원리가 있어서 가다가 한계 상황에 닿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미리 가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선생님 혼자 보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쓰고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 얘기합니다(정명석 목사, '1997924일 아침말씀')."

 

한계가 있기에 죽지 않는 것이다.

 

"법이란 사람을 죽이려고 내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려고 법을 내놓습니다. 담장을 치는 원인은 사람들 못 다니게 담장을 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을 살리려고 담장을 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한계가 바로 법입니다. 하나님이 지구에 한계를 그어놓았고, 바닷물의 한계를 그어놓으셨습니다. 그 한계가 없으면 바닷물이 수시로 마을을 덮쳐서 다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이 복을 못 받는다고 하나님께서 순리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 금주의 말씀입니다. 늘 걱정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메시아가 이 세상에 왔을지라도, 아무리 구세주라도,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아무리 애인이라고 해도 자기 한계 이상을 못해주기 때문입니다. 한계가 어디까지라면 항상 그 한계까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한계만큼 못해줄 때가 있습니다(정명석 목사, '19981021일 아침말씀')."

 

인간을 향한 신의 한계가 있다.

 

"하나님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메시아도, 성령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을 향한 신의 한계입니다. 메시아 역시, 구원의 한계가 있습니다. 성령도 현재 온 세상에서 한계까지만 행하시고 더 이상 못 하고 가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하나님을 막연히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만 생각해 왔습니다(정명석 목사, '2024317일 주일말씀')."

 

한계 위에 하나님이 도우신다

 

"자기가 열심히 해봐야 자기의 한계를 알게되고, 그 한계 위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인간의 힘이 떨어지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여러분이 잘하는 것을 보여줘야 하나님도 잘하는 것을 보여주신다(정명석 목사, '19951112일 주일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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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이 떨어졌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힘이 다할 때까지 했고 그 위에 역사하신다는 의미다.

 

"사람이 한 번 죽었는데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지옥에서 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남을 마음대로 살릴 수 있었다면 자기 자신도 100% 살렸을 것입니다. 내가 남의 병을 고친다면 그 정도의 내 병도 고칩니다. 그러나 한계 이상은 못합니다. 이미 죽어서 썩었는데 고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썩은 시체를 고칠 수 있다면 내가 왜 죽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그러나 한 번 죽으면 끝나기에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한 번 죽으면 끝나니까 죽음을 무서워하고, 병을 다스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정명석 목사, '199735일 아침말씀')."

 

주관권의 한계를 정하신 이유가 있다.

 

"<마음과 생각, , >도 한계가 있습니다. 모두 자기 주관권, 자기 한계까지입니다. 마음과 생각의 주관권, 혼의 주관권, 영의 주관권을 넘은 것은 하고 싶어도 한계선이 있어서 못 합니다. 마음과 생각 자체, 혼 자체, 영 자체로는 <육의 세계>에서 <>같이 행하지 못합니다. <>같이 육계의 음식도 못 먹고, 물건도 못 들고, <>같이 일도 못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물건을 훔치며 그리 도둑질을 해도 <>이나 <>이 도둑질했다는 소리를 못 들어 봤습니다. <><>이 한계를 넘어서 <육의 세계>에 와서 <>처럼 도둑질을 할 수 있다면, <악한 영들><육의 세계>에 와서 얼마나 도둑질을 해 가겠습니까? 고로 하나님은 한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정명석 목사, '2015712일 주일말씀')."

 

법칙이라는 원리가 있어 한계가 있다

 

"보면 자기가 조금 다른 길로 가기 때문에 '이 길로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길로 가는 사람은 계속 그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법칙이란 원리가 있어서 가다가 한계 상황에 닿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미리 가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정명석 목사, '1997924일 아침말씀')."

 

(잠언 30: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이처럼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한계를 정하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스스로 법칙과 원리로 한계를 정하시고 그 한계를 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2부에서는 악인을 왜 없애지 않으시는지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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