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6월9일 주일말씀>
내가 너와 함께하니 너도 같이 꼭 행하여라 그래야 된다
본 문 : <이사야 43장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여호수아 1장 7절>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마태복음 28장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너를 도와도 같이 해야 된다
하나님이 도와주셔도 저마다 하나님과 같이 최선을 다해야 힘이 나서 희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같이 해야 기쁘고, 문제도 해결된다. 머리와 그 대상인 지체는 항상 함께 해야 된다. 사랑하는 자라면 같이 해야 한다. 같이 해야 사랑하는 자이다. 같이 살며 같이 해야 산 자요, 죽은 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고 믿고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행할 때 특히 절대 도우신다. 이를 절대 믿고 낙심치 말고 감사하며 맘과 뜻과 목숨 다해 자기도 행해야 된다.
오늘 말씀은 선생이 극한 어려움 중에 기도하니 “나 하나님은 선 편의 하나님이다. 너를 돕는 여호와니라.”하시며 주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모든 일에는 증거가 능력이요, 권세요, 권한이요, 실상이다. 재판 때도 증거가 능력, 수사 때도 증거가 능력이다. 섭리사에서 선생도 해 놓은 것이 증거요, 능력이요, 표적이다. 부인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판사이시기도 하다. 하나님도 우리가 행한 근거를 선악 간에 보시고 판단하신다
예수님은 무지한 자들을 용서해 달라며 십자가를 지고 만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가셨다. 그러므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 예수님이신 근거를 남겼다. 이 시대도 모르고 하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해야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한 몸 되어 모두 사명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도 하나님께 “사람들은 모르니 절대신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같이 못 하니 하나님이 공의롭게 뜻대로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였다. 그때 하나님은 “내 뜻대로 해 준다.” 하셨다.
하나님과 행한 근거가 있어야 된다.
성령과 성자와 예수님과 같이 행한 근거가 있어야 된다. 해 놓은 근거가 있어야 능력이 된다. ‘월명동’은 하나님과 같이 행한 곳이다. 해 놓았으니, 그것이 증거요, 능력이다. 선생은 처음에는 지금과 같이 만들 생각도 못 했다. 이것이 바로, 내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으로 행하신 근거이다. 하나님이 절대로 전체를 구상하고 행하신 증거이다.
월명동 다릿골 골짝의 ‘성령길’도 성령이 감동 주고 행하신 근거가 있다. 그렇게 길을 낸 것이 증거요, 능력이다. 하나님의 구상대로 “길을 어떻게 내라.” 하고 모두 성령이 말해 줬다. 전체 일곱 번의 S라인 커브가 있는 길이다. 섭리사 46년 동안 모두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해 주셨다. 우리들의 육신을 쓰고 행하셨다. 같이 해 와서 아는 것이다. 이것을 절대 증거한다. 지금도, 미래에도 항상 함께 행하신다. 믿어야 같이 하고, 같이 행해야 겪으니 안다.
성경도 증거가 능력이다.
근거를 제대로 알고 증거할 때 능력이 따른다. 근거가 있어야 믿고 따르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흔히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가르친다. 그럼 인류가 출현한 지 6000년밖에 안 된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과학을 통해 인류가 수백만 년 전부터 출현한 증거를 이미 밝혔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그런데 들에서 형인 가인이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 아담과 하와가 최초 인류의 조상이라면 그 두 아들 중 하나인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니 이제 남은 인류가 아버지인 아담, 어머니인 하와, 그리고 가인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하셨다(창세기 4:14) 아담, 하와, 그 자녀 가인과 아벨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에 살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가인을 죽이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 근거로 볼 때, 아담과 하와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 신앙의 조상이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종교 역사를 시작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펴셨다.
모세가 예수님 오기 전에 구약 때 말하기를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자가 온다.” 하였다. 그 말을 하고 예수님이 약 1500년 후에 오셔서 “모세가 말한 자는 나 예수다.” 하였다. 과거에 온다는 자는 영이 오고, 새 시대 사명자로는 이름도, 족속도, 주관권도, 시대도 다른 자가 와서온다는 자의 심정과 사명으로 애타게 외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몰랐다. 고로, 새 시대에 온 자가 “내가 그의 사명도 한다.” 한다. 이것이 증거이다. 하나님도, 성령도, 성자와 예수님도 모두 이같이 가르쳐 주어 그 말씀을 전해 주었다. 믿고 따르는 자가 복 있는 역사의 주인들이 되어 간다.
구약 말라기 4장 4-5절에서 “메시아가 오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온다.” 하였다. 엘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900년 전의 사람인데, 열왕기하 2장 11절을 보면 엘리야가 불말이 끄는 불수레를 타고 승천하였다 했다. 기독교인들은 엘리야의 육이 승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 때 변화산에 모세와 엘리야의 영이 나타났다. 기독교인들도 그때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를 두고 영이라고 하지, 육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 근거로 볼 때, 승천도 엘리야의 영이 한 것이다. 역시 ‘근거’이다. 결과를 보고 원인도 안다. 하늘나라는 영의 나라라, 육신은 한 사람도 못 간다. 온다는 엘리야가 육으로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하지 않고 영으로만 왔다. 실제 육은 다른 자다. 세례요한이 온다는 엘리야의 심령과 그 사명으로 왔다. 신약 때 하나님이 오셨는데 영으로 오셨다. 영이 오셔서 예비한 자, 예수님의 육을 쓰고 구원역사를 하셨다. 항상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시대마다 ‘땅의 육’을 예비하셨다. 그들을 통해 목적을 행하셨다. 이것이 근거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내가 다시 온다.” 하였다. 그리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만에 승천하셨다. 그 후로 예수님의 육신이 오기를 모두 기다린다. 예수님도 하늘나라에는 육이 못 간다고 하였다. 예수님도 승천한 것은 영이다. 베드로전서 3:18에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했다. 예수님이 성만찬 때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오늘이 마지막이다. 또 너희와 먹으려면 하늘나라에 가서 먹는다.” 하셨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니, 다시 못 산다. 이것이 그 근거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영이 다니신 근거가 성경에 모두 다 나와 있다. 신약역사 2000년간 많은 자들이 예수님의 영만 보았지 육을 본 자가 없다. 고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영이 오신다. 그 영은 하나님의 사명자를 택하여 쓰신다. 사명자는 그의 육신이 되어서 그의 심정과 사명으로 구원하는 일을 한다. 바로 그의 몸 되어 시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선생이 산에서 20년 동안 기도할 때 예수님이 “성경에 약속한 대로, 나 다시 왔다.” 하셨다. 예수님의 영이 와서 천 년 역사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이 다시 올 때는 ‘영’이 온다. 고로 합당한 자의 ‘육신’을 쓰고 시대 복음을 전한다. 근본의 영으로는 하나님, 성령, 성자가 행하신다. 이 모든 것은 근거를 중심한 말씀이다.
여호수아 때 태양이 멈추었다고 성경에 쓰여 있다. 모두 태양이 멈췄다고 외치고, ‘기적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 근거가 없다.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이 함께하여 적에게 큰 우박을 내려 적의 군대가 그 우박을 맞고 거의 죽어서 나머지는 쉽게 싸워 전쟁이 일찍 끝난 것을 말한다 (여호수아 10:11) 고로 ‘시간적 기적이다. 지금은 지동설 시대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 그때는 천동설 시대로 태양이 가는 것으로 성경을 쓴 것이다. 시대성을 가지고 성경을 풀어야 풀어진다.
성경에 ‘아담의 갈빗대를 부러뜨려 하와를 만들었다.’했다. 현재 사람이 남녀 생식세포 즉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태어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창조 법칙은 동일하다. 고로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아담의 갈비뼈로 비유한 남자의 정자로 하와를 만들었다.’ 함이다. 남성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 정자를 갈빗대로 비유한 것이다.
‘아담’이란 이름은 원어로 풀면‘남자(man)’라는 뜻이다. ‘하와’란 이름은 원어로 풀면‘산 자의 어미, 생명’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왔다.’는 것은 ‘아담, 남자’의 유전자로 ‘하와,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하와의 아버지의 유전자로 하와를 만들었다.’ 함이다.
베드로후서 3장 10~12절의 불심판에 대한 말씀은 ‘주가 다시 오셔서 말씀하시면 늘 그 말씀을 듣고, 뜨거운 불 같은 말씀으로 영적으로, 육적으로 다 녹아지고 풀어진다.’ 함이다. “해가 어두워진다. 달이 빛을 못 낸다. 별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는 사명자들이 ‘사명을 잃는다.’라는 뜻이다. ‘새 시대가 오면 구시대의 해, 달, 별 같은 사명자가 사라진다. 새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자가 그 따르는 자들과 해, 달, 별같이 사명을 한다.’ 함이다.
‘휴거’도 근거를 봐야 한다.
구시대 기성인들은 예수님의 육이 오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육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휴거를 푼다. 사도 바울은 “혈과 육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했다. (고린도전서 15:50) 예수님도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육이 죽으니, 이제 영이 영광에 들어간다.” 하셨다.(누가복음 24:26) 휴거는 다시 오신 예수님을 절대 믿고, 하나님, 성령, 성자를 믿고 사랑하면서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의 휴거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다리던 새 역사가 온 것을 휴거로 본다. 새 시대를 맞은 것을 휴거로 본다. 새 시대를 만나 새 역사를 편 것을 그 시대 휴거 역사로 본다. 또, 영이 황금 천국으로 간 것을 휴거로 본다.
2000년 신약역사가 끝나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 그때 예수님이 하나님, 성령, 성자와 함께 사명자의 육을 통해 전한 말씀을 듣고 삼위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행하면서 구원역사를 펴신다. 그게 바로 휴거이다. 그 사랑의 대상이 되어 살면, 그것이 휴거 역사이다. 그리고 그 영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휴거이다.
기성인들은 예수님의 육이 다시 오시면 맞고 자기 육이 천국에 간다고 한다. 그 말은 성경 말씀과 다르고, 이치에 안 맞다. 하늘나라에는 육이 못 간다고 성경에 다나온다. 사탄은 모르는 만큼 역사한다. 지금도 모르는 만큼 역사하여, 모두 속는다. 그 후에 알면, 그동안 손해 간 것을 알고 탄식한다. 사탄이 손해 배상을 안 해 준다. 하나님은 보낸 자를 통해 전한 말씀을 듣고 행하면 알아주시고 축복해 주신다. 아멘.
선생도 예수님을 300번 이상을 보고 같이 살았다. 모두 영체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서 3일 후에 제자들에게 몇 번 나타난 것은 모두 ‘영’이었다. 예수님은 “내가 육이 죽은 후에는 한 번도 육으로 나타난 적이 없다. 전하여라.” 하셨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말씀
하나님께서 성령과 함께 선생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그리고 돕듯이, 섭리인 모두를 사랑한다. 돕는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 것들이니, 나 하나님이 성령과 해 주는 것이다. 섭리인들 모두 사랑한다. 걱정한 것, 안 한 것 모두 어찌되었나 과거를 보아라. 다 해 주지 않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증거와 근거를 말씀으로 보여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이 만족하시게 사랑을 안 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사랑하신다. 절대적으로 사랑해서, 돕고 함께해 주신다. 이제 우리도 목숨 다해 일편단심으로 끝까지 변치 않고 사랑하는 신앙을 절대 해야 된다.
변해서 끝나면 과거에 사랑한 것이 다 허사가 되고, 사망으로 가는 육과 혼과 영이 된다. 하나님, 성령, 성자, 주와 사랑의 대상 되어 같이 살았어도 변해서 떠나면, 그 궁에서 못 산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삼위체 절대 사랑’이다. ‘절대 사랑과 휴거’라고도 칭했다. 이 사랑이 기쁨, 희망, 구원이요, 황금 천국이다. 근거가 없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믿을 수 없으시니 충성으로 일하여 일한 근거가 남도록 행해야 한다. 절대 사랑, 믿음, 진리, 전도, 생명 관리, 기타 모든 공적과 희생과 각종 일들이다. 바로 이것이 증거의 능력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땅 끝까지 이르러 나를 증거하라(사도행전 1:8).” 하셨다. 증거할 때, 능력이 온다. 성령이 역사하신다. 오늘 말씀의 주제, '내가 너와 함께하니 너도 같이 꼭 행하여라. 그래야 된다.' 이를 늘 잊지 말고, 기억하고 행하길 바란다.
하나님, 성령, 성자 삼위의 평강을 빈다. 아멘.
[주희동 기자 약력]
전직목회자 천년솔 회장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역임 2020 한국을 빛낸 문인 선정 한국문인협회 금산지부장 금산군 배드민턴 협회장 인터넷 신문 청솔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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