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의인과 함께 하신다>
편 집 부 작성
의인이란 말에도 옳을 의(義)자가 있고 공의라는 말에도 그렇다. 공의(公義, Righteousness)는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평함과 정의로움이 함께 있는 말이다.
(1) 공의의 하나님
(레위기 19: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찌며
이 구약의 말씀이 지금 시대에 반드시 지켜지길 원하게 된다. 잘 지켜지는 것에 대해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바람이 아니라 공의로운 재판이 이뤄지길 희망하는 것이다.
(2) 공의로우신 하나님인가
우주를 창조하실 때 조금이라도 어긋나 있었으면 지금과 같은 우주가 될 수 없었다. 우주가 창조된 뒤로도 운행하실 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셨기 때문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때로 하나님이 공의를 말씀하시면서도 공의로우신 것인가 생각 들 때가 있을 정도이다.
(3) 전체를 보아야 공의로움이 보인다
창세기 요셉의 경우가 그렇다. 전체를 보지 않으면 과정 중에 겪게 되는 요셉의 고통과 환난을 이해할 수가 없기까지 하다.
a) 형제들에게 배신 당해 팔려간 요셉
(창세기 37: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배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팔아버린 이유는 시기 질투였다.
(창세기 37:3-4)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꿈 이야기를 하는 요셉-라파엘로 작(프레스코화),출처:Daum이미지]
사탄 루시퍼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시기 질투하였듯이 요셉도 같은 이유로 가까운 가족에게서 배신당하였다. 정명석 목사도 가족과 같았던 제자, 가장 옆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자로부터 배신당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오른팔도 같았던 루시퍼가 하나님의 뜻을 깨기 위해 영적 사랑을 육적 사랑으로 보게 만들어 아담과 하와를 떨어뜨린 것과 같고 요셉을 형제들이 팔아넘긴 것과 같다.
b) 이성의 누명을 쓰다
(창세기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간 뒤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가 된다. 그 주인의 아내가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는다.
(창세기 39:9-10)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죄를 멀리하고 이성으로부터 깨끗했다.
(창세기 39:11-12)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아예 여인을 피해 옷을 버려두고 나가버리자 요셉에게 누명을 씌우고 만다.
(창세기 39:14-15)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이렇게 요셉이 자리를 피하느라 버려둔 옷을 오히려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인 것처럼 조작하였다.
(창세기 39: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이렇게 거짓 증언을 한다.
[요셉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 출처: Daum이미지]
c) 옥에 갇힌 요셉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으나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도움을 주신다. 상식적으로는 처음부터 감옥에 가지 않게 하실 수 없는가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감옥에 갔으니 죄인이 확실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죄인이 아님에도 감옥에서 오히려 더 큰 뜻을 이루는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세기 39:20-21)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정명석 목사 역시 2009년부터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있었으나 그곳에서 성자 본분체 말씀과 창조목적, 월명동 백보좌 형상 등 수많은 인봉을 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였다.
d) 총리가 된 요셉
(창세기 41:15-16)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여기서 '바로'는 이집트의 왕 칭호인 '파라오'를 의미한다. 요셉은 신처럼 여겨졌던 파라오로부터 인장 반지를 받고 총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창세기 41:42-43) 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정명석 목사 역시 하늘의 인봉을 풀어 영적으로 커다란 역사를 이루었다. 육적으로 보는 자들은 영적 사랑도 육적으로 보듯이 영적인 큰 역사도 육적으로 보니 초라하게 보거나 아예 인식도 하지 못한다. 정명석 목사는 환란과 고통의 기간 동안 요셉이 받은 축복과 같은 역사를 이미 영적으로 이루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며 정녕코 승리하게 해주고, 잘 되고 형통하게 해 준다는 말씀을 수시로 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그동안 잘되고 형통해 왔고, 지금 ‘잘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 사랑의 창조 목적을 이룬 자들로서 ‘용기’를 가지고 담대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기분이 나쁘다고, 기분이 좋으라고 해 주신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살다가, 시대의 어려움에 처해 힘들고 걱정하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힘’을 주시기 위해 '내가 책임지겠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 다만, 너희가 지킬 것만 지켜라. 육적으로 치우쳐 좌우로 흔들리지도 말고,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떤 환경이 와도 오직 전능자 하나님과 성령님만 의지하고 함께 행해라.'하신 생명의 말씀입니다(정명석 목사, '2021년 10월 31일 주일말씀')."
요셉이 겪은 고난의 길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러한 과정을 통해 더 큰 역사를 이루시려는 뜻이 있었다. 하나님의 뜻의 길을 육적으로만 바라보면 자기 차원에서 인식하게 된다. 억울하지만 끝에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가 이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육적인 역사만 바라보면 오해하고 그릇된 인식에 빠질 수 있다.
(창세기 45:7-8)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모든 고난과 환난을 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신 것으로 이해한다. 형제들이 요셉에게 고통을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 왕에게 자신을 아버지처럼 삼고 온 나라의 통치자로 삼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4) 하나님은 할 일을 다 하셨다
"항상 하나님은 매일 새벽부터 하나님으로서 할 일을 다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하나님의 할 일들 속에는 하나님 자신의 할 일도 들어 있고, 우리들을 위한 할 일도 들어 있다. 고로, 하나님이 해주셔야 될 것은 매일 다 해 주시니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야 된다.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그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할 일을 다 해 본 자는 그 기쁨과 보람을 안다(정명석 목사, '2023년 11월 19일 주일말씀')."
하나님이 할 일을 다하셨는데 왜 세상은 이런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다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마지막에서 어떤 결과를 맺는지 끝까지 읽어야 한다. 정명석 목사는 요셉과 같은 입장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있다.
물론 요셉에게 닥친 환난이 예정된 것은 절대 아니다. 선한 것만 예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이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행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알고 믿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46:11)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5) 의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닮아야 의인이라 할 수 있다. 악한 말을 하고 거짓을 조작해 내고 여론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목적대로 결과를 변질시키는 자들은 하나님을 닮았다 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미음이 청결한 자라야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우리의 끝맺음은 세상에서가 아니다. 영원한 세계까지 이어지는 그 마무리가 우리가 고려해야 할 끝이다. 요셉은 그 시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누렸다. 마지막에 누구와 함께 하실지는 이미 명확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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