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 옥합의 진실

임란초 작가 | 기사입력 2023/06/12 [12:28]

향유 옥합의 진실

임란초 작가 | 입력 : 2023/06/12 [12:28]

<향유 옥합의 진실>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자기의 생각 수준과 차원에 따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하나님이 보낸 자도 자기의 영적 성장 정도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1) 노아와 함

 

노아는 의인이며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하셨다.

 

(창세기 6:9) ...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런데 둘째 아들 함은 노아가 아담 때 이루지 못한 ‘생육하고 번성하고 주관하라’는 축복을 이루지 못한 것을 다시 복직하기 위한 과정을 자기의 비뚤어진 인식관으로 바라보았다.

 

(창세기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아담과 노아의 공통점이라면 이들은 육적으로도 번성의 축복을 누리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결혼하여 자손을 낳는 것인데 이러한 번성의 축복은 뜻 안에서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왜냐면 하나님은 자기 좋은 대로 결혼하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심판하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아담과 하와가 생육과 번성의 순서가 바뀐 것이고 창세기 6장에서 악한 사람들이 자기 좋아하는 대로 결혼한 것이 문제였다면 노아는 이러한 두 가지 부분에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완전한 의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 노아가 창세기 1장에서 아담에게 주셨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창세기 9장에서 다시 받게 되었을 때 육적인 결혼을 통한 번성이기는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러한 완전히 뜻에 합당한 번성의 과정에 대해 둘째 아들 함이 자기 주관으로 바라보고 꺼리는 것이라 잘못 생각하여 겉옷으로 가리려고 했을 때 노아로부터 심각한 저주를 받게 된다.

 

(창세기 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 다윗과 미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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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족속에게 언약궤를 빼앗겼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다윗은 기뻐서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게 된다. 그런데 다윗의 아내 미갈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마음에 업신여겼다.

 

(역대상 15:2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다윗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춤을 춘 것이었으나 미갈은 자기 주관과 입장에서 평가하고 만다.

 

(사무엘하 6:20-21)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하나님을 위해 기쁨으로 영광을 돌린 다윗에게 방탕한 자가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하였다고 말하고 말았다.

 

(사무엘하 6: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이처럼 하나님이 의롭다고 한 자를 자기 수준의 입장과 인식관에서 함부로 판단하고 오해하면 그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을 그렇게 대한 것과 같다.

 

(3) 마리아의 향유 옥합

 향유옥합 마리아 : 네이버 블로그

 

먼저 향유 옥합을 드린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을 밝힌다.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이 바리새인이었다. 예수님을 청한 바리새인을 시몬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이다(누가복음 7:39-40). 이는 베다니 나사로와 다른 인물이다. 

 

(마태복음 26:6-7)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누가복음 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일단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예수님께서 귀신을 물리쳐 준 인물이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옆에 있었으며 부활 후 처음 영으로 뵈었던 여인이다. 죄가 많았지만 많은 죄를 사함 받은 만큼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하였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유대인들이 향유 옥합을 언제 드리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시던 시절, 이스라엘에는 혼인 적령기가 된 처녀의 가족이 옥합을 구입해서 값비싼 향유를 그 안에 채워 넣는 풍습이 있었다. 옥합의 크기와 향유의 가격은 재산에 비례하였다. 향유 옥합은 처녀의 결혼 지참금의 일부로, 총각이 그녀를 찾아와서 구혼을 하면 그녀는 그 옥합을 깨뜨려 그의 발에 붓는 것으로 화답했다(잭키 켄달,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현명한 기다림').”

 

인용문과 같이 옥합을 깨뜨려 남자의 발에 붓는 것은 청혼에 대한 승낙을 의미했다. 그런데 마리아는 거기서 더 나아가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입을 맞추기까지 한다.

 

(누가복음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2000년 전 사건이다. 신랑과 신부가 될 사람 사이에 있을 일에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무언가 부적절한 관계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 시몬은 마음속으로 저 여인이 죄인인 줄 모르는가 생각했다.

 

(누가복음 7: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주의 깊게 볼 부분은 ‘자기를 만지는’라는 표현이다. 예수님을 만져서 혈우병이 나은 여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죄인인 여인이 ‘만지는’ 이 경우에 대해서는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무언가 죄가 될 만한 상황과 연관시킨 것이다. 그것도 그냥 만진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으로 닦고 입을 맞추었다. 제자들의 반응은 단지 팔아서 가난한 자를 돕지 않았냐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가룟 유다는 이 사건 직후 바로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6:13-15)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예수님은 이 여자가 행한 일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말하여 기억하라고 하셨지만 가룟 유다는 달랐다. 예수님이 만약 꺼리는 것이 있었다면 기억하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이 일에 대해서 영적인 사랑으로 보지 않고 육적인 사랑으로 바라보았다. 가룟 유다가 단지 돈을 아까워하거나 돈을 위해서 예수님을 팔았을까.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를 깨닫고는 돈을 돌려준 뒤 스스로 목을 매고 만다.

 

(마태복음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경제적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판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떻게 자기를 따르던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 시험이 들었던 결과 이뤄진 행동이었다.

 

(4) 영을 육으로 바꾸는 자

 

                                                            ⓒ jsmagazine.net

 

사탄이 시도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죽는다고 말하자 사탄은 곧바로 죽지 않는다고 속인다. 이는 영적 죽음을 육적 죽음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영적인 것을 육적인 것으로 뒤바꿔 버린 것이다.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사탄의 말이 맞는 것 같이 들린다. 왜냐면 실제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나 육신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과 관계성이 단절되어 영적인 죽음을 맞았다.

 

(에스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

 

이와 같이 사탄은 예로부터 영적인 것을 육적인 것으로 변질시키는 짓을 계속해 왔다. 가룟 유다에게도 사탄은 이미 예수님을 이성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보도록 생각을 넣고 있었다.

 

(요한복음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5) 예수님의 반응과 구원자의 태도

 

일단 향유 옥합을 드리는 상황은 예수님께 그리 좋은 인식을 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육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심각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수준과 차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향유 옥합을 바쳤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예수님과 마리아 사이에는 무언가 남다른 관계성을 맺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리아가 했던 행동은 죄인이 예수님을 만지는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점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예수님이 바라볼 때 마리아와 바리새인은 죄가 많고 적고의 차이일 뿐이다.

 

(누가복음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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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바라보는 방식은 사랑과 구원자의 관점이다. 절대로 육적인 사랑을 해서는 죄가 사하여지는 일이 없다. 영적인 지극한 사랑으로 나아왔기에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동을 남녀 사이의 혼인 관계나 육적 사랑으로 바라보시지 않고 영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주신 것이다. 비록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바리새인과 가룟 유다가 오해를 할지라도 말이다. 마치 다윗이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춤을 추었듯이 예수님도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마리아의 죄를 사하여 구원하시는 것에만 집중하셨다.

 

(6) 예수님과 다른 관점들

 

외경으로 분류된 도마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마리아를 아내(wife)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다.

 

“마리아는 그것에 대해 자격이 있다(Mary is worthy of it)

예수가 그들에게 말하길, 나의 아내…(Jesus said to them, My wife…)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She will be able to be my disciple)

하버드 신학대학 캐런 L 킹 박사는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봤다. 부인이라는 말이 또렷하게 빛났다. 영지주의에서는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고행을 함께하는 영적(靈的)인 관계의 사람’을 뜻하는 통상적인 단어다. 하지만 그다음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라니…> 킹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영적인 관계를 뜻하는 게 아니다.’(중앙 선데이, ‘과학적으론 진품 … ‘아내’ 표현의 진위 놓고 공방 이어져’, 201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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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 비유와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셨던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육적인 사랑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자녀가 대대로 이어져 후손이 생존하고 있다는 거짓 뉴스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영적인 사랑의 관점이 아니라 육적인 인식관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사탄의 전형적인 방법에 속아 영적 사랑을 육적 사랑으로 인식했으므로 그들의 이름이 법조문에 올라가 있고 주가 대신하여 죄 값을 받으며 그 이름들을 주의 이름으로 바꿔주신 것이다.

 

(골로새서 2: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예수님 오신 신약 이후 마음에 음욕만 품어도 이미 죄를 지은 것과 같다 말씀하셨듯이 뇌실과, 뇌사랑 시대에는 인식을 잘못한 것만으로 사탄에게 끌려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냥 두면 사탄에게 뇌실과를 빼앗기는 것이다. 각자 한 명이 모두 주와 영적 사랑을 나누는 신랑 신부의 관계이기 때문에 잘못된 인식관과 의심, 불신을 통해 했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법조문에 쓰여진 각각의 이름을 주의 이름으로 모두 대체하고 주가 십자가를 지면서 죄를 사하심으로 창조 목적을 이루신 것이다.

 

죄가 없는 자만이 다른 이들의 죄를 대신 할 수 있다. 창조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자는 오직 흠 없는 어린 양과 같은 분이다. 그가 말씀을 받아서 정확한 때에 성경의 예언을 이루고 창조 목적을 완성 시켰다는 것은 완전한 영적 사랑을 이루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7) 근본의 창조목적

 

아담과 노아는 결혼하여 육적인 번성도 이루는 것이 뜻에 합당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에서 차원을 높여 영적인 번성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사도 바울도 신앙으로 낳은 아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디모데전서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

(디도서 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

 

이제 신약을 넘어 새 시대가 오면 영적인 번성을 완성급으로 이루는 시대가 온다. 성삼위를 신랑으로 모시고 신부의 영으로 영원히 사랑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육은 영을 만들기 위한 틀과 껍질 같은 역할일 뿐이었다. 육신은 영원한 사랑의 창조목적을 이룰 수 없다. 하체 사랑은 뇌 사랑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탄은 육신으로 영을 만들어 신부의 영이 될 수 없으니 영적인 완성급의 사랑을 육체로 하는 하체 사랑으로 떨어뜨리려고 하고 있다. 영적 사랑을 육적인 사랑으로 인식하고 성자와 예수님의 육으로 보낸 자를 그런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사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이 땅에서도 지상 천국을 이루지만 육신은 영을 만들기 위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완전하게 깨닫고 영적 사랑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완전한 진리이다. 창조목적을 이루는 것은 결국 성삼위와 천국에서 영원한 혼인 잔치를 누리는 것이다. 여기에 육적인 사랑이 끼어들 필요가 없다. 그렇게 육적 차원에서 사랑을 드리려고 하는 것 자체가 사탄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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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는 육적인 사랑을 드린 것이 아니다.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이뤄주신 것에 대한 최고의 사랑 표현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영적인 신랑과 신부로서 가장 모범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오해의 여지를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진심을 받아주시고 오히려 기억하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다만 아직 신앙이 어리거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 차원에서 이해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룟 유다와 같이 시험에 들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8) 더 높은 차원의 부활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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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자를 의심하고 향유 옥합 깨뜨린 이후 시험에 들어 있으면 온전한 부활을 이룰 수 없다. 주는 이미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셨다. 그런데 아직도 따르는 제자들이 사탄이 주는 생각에 빠져 창조 목적을 이루는 완전한 영적 사랑을 육적 사랑 차원으로 바라보면 부활을 이룰 수가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대속을 위해 십자가를 져주셨는데 아직도 근본적인 회개를 하지 못해 육적 하체 사랑의 눈으로 인식하고 있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가 없다. 아니 다시 못 박히실 수 있다. 십자가 위에서 십자가를 지시며 창조 목적을 이뤄주셨는데 의심하고 오해하면서 차원 높게 부활되지 못하면 내려오실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진리라면 실제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가 받아온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실제로 성취되었고 창조 목적을 이룬 그 앞에서 모든 의심과 불신, 자신의 육적인 인식관에서 나온 오해를 쪼개고 회개해야 다시 십자가를 지지 않게 된다.

 

[임란초 작가 경력]

 

고려대 컴퓨터학 전공

Reil & Scien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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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아두 2023/11/28 [20:12] 수정 | 삭제
  • 오마이갓.. 너무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글 앞으로도 많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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