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와 환생에 대한 올바른 이해[1] (하강현 작가)

1부 윤회와 환생 개념

정성화 기자 | 기사입력 2023/03/23 [23:04]

윤회와 환생에 대한 올바른 이해[1] (하강현 작가)

1부 윤회와 환생 개념

정성화 기자 | 입력 : 2023/03/23 [23:04]

<윤회와 환생에 대한 올바른 이해>

 

                                                           [ 순 서 ]

                                                   1부 윤회와 환생 개념

                                                   2부 윤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

                                                   3부 다른 영이 임하였다

                                                   4부 재림부활

                                                   5부 카르마와 성경

                                                   6부 윤회가 아닌 재림부활

 

 

▲ 티벳불교의 12윤회도[출처:Daum 이미지]



1부 윤회와 환생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은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거나 그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 것일까?

 

“‘괜찮아. 어차피 죽으면 다 끝나는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이것도 바람직한 시각이 아닙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처럼 아름답고 수학적으로 완벽한 세상에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주의 존재에는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고, 우리도 어떤 목적을 지니고 우주에 태어났다고 믿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생각입니다(맨리 P. 홀, ‘환생, 카르마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 

 

(1) 윤회의 개념

 

“윤회[saṃsāra(산), 輪廻]: 생명이 있는 것, 즉 중생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불교사상.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천상(天上)의 육도(六道:六趣)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현재 우리들 앞에 있는 축생, 예를 들어 파리나 모기 등도 전생에는 인간이었던 것이 바뀌어 태어났는지도 모르며, 또 장차 우리들이 저승에서 파리·모기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6도 중 어느 세계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와의 총체인 업(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하며, 또한 이 업은 이승에 있는 우리들의 상식을 초월하여 판정되어, 선업(善業)에 의하여 선의 세계에, 악업에 따라 악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한다. 한편 부분적이기는 하나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사상가 중에도 이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말한 이가 상당수 있었다. 니체의 영겁회귀(永劫回歸) 사상 등은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두산백과사전).”

 

▲ 육도윤회도[출처:Daum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이전 생과 지금 생애, 다음 생애에 대해 말한다. 너무나 쉽게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솔직히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철렁한다. 물론 이번 생이 끝나면 다음 생이 있을 것이라는 윤회에 대한 개념에 입각하여 그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회’ 사상은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일까.

 

(2) 전생과 환생

 

‘전생(轉生)’이라는 말은 구를 전(轉)자를 써서 윤회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갖게 된다.

 

“환생(還生, 영어: reincarnation)은 죽은 생명체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윤회라는 말과 함께 자주 쓰이고 일부의 다른 종교에서도 종교적 내용을 언급할 때 함께 쓰인다. 현재까지 환생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례는 없다(위키백과사전).”

 

‘환생(還生)’에서 환자도 ‘돌아올 환’이기 때문에 윤회, 전생, 환생은 결국 ‘돌고 도는 인생’이라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윤회나 환생, 전생의 개념에 대해서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윤회는 어떤 교리가 아니고, 실제 서구의 연구에 근거를 둔 거죠.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인지과학연구소에 제일 자료가 많아요. 그걸 이끌었던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은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을 조사했어요. 통역관 데리고 범죄 사건 수사하듯 모은 케이스가 2400건 정도 돼요. 환생 개념은 인도나 미얀마가 일반적인데 제임스 라이닝어(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중 가장 잘 알려졌다) 사례처럼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 영국에서 점점 많아졌죠. 요새는 3000케이스 이상 될 거예요([한겨레S] 이충걸의 인터+뷰, 죽음학 정현채 명예교수, ‘환생은 환상이 아니에요, 죽음 뒤에도 패자부활전 있죠’).”

 

앞으로 우리는 이러한 전생, 환생, 윤회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논의를 이어나갈 것이다.

 

 

(3) 윤회의 구체적 사례들

 

“윤회의 기억의 증거는 주로 증명 가능한 전생의 상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서 얻어진다. 버지니아대학교의 정신과 교수인 이안 스티븐슨은 입증된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윤회의 기억을 주장하는 약 2,000개의 데이터베이스를 모았다. 어떤 경우는 스티븐슨이 실제로 어린이를 동반하여 그들 자신이 전생에 살았다는 마을에 가보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그 마을들에 와본 적이 없는데도 주변 경관에 익숙해 보였고, 그들이 살았던 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로는 자신의 가족 구성원들을 기억하기도 했다. 한 경우에는 어린이가 전생에 숨겨 둔 돈을 기억해, 그가 기억하는 장소에서 돈을 발견했다(아미트 고스와미, '영혼의 물리학').”

 

이 인용문에서 말하는 ‘전생’은 윤회와 동의어로서 구를 전轉 자를 쓰는 ‘전생’(轉生)이 아니라 이전 생으로 앞 전前 자를 쓰는 ‘전생’(前生)으로 앞서 살았던 인생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전생의 기억은 과거에 실제로 살아있던 영이 어린아이에게 임하여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임을 앞으로 밝혀나갈 것이다.

 

“스티븐슨만 그런 자료를 모은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헌(L. Hearn)에 의해 연구된 예가 있다. 카츠구로(Katsugoro)라는 일본 소년은 여덟 살 때, 자신이 몇 년 전 다른 생에서 다른 마을에 사는 농부의 아들 토조(Tozo)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전생에 그의 아버지가 자신이 다섯 살 때 죽었고, 자신도 그 일년 후 천연두로 죽었다고 했다. 그는 그 외에 전생의 그의 부모나 그가 살던 집들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했다. 카츠구로를 데리고 그가 전생에 살던 마을에 갔을 때,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이 살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모두 합해서 그의 전생의 기억 중 열여섯 개 항목을 확인했다[헌[Hearn] 1897](아미트 고스와미, '영혼의 물리학').”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과거의 영이 살아있는 어린아이에게 임했다고 해서 자체 영이 없이 육신만 있는 아이에게 예전 삶을 살던 영이 들어간 것으로 이해하면 윤회를 제대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1948년 인도의 자이푸르(Shahpur)에서 태어난 스와나라타 미쉬라(SwarnalataMishra)는 세 살 때 근처 마을로 여행을 가자, 전생의 기억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갑자기 운전기사에게 ‘저쪽 길로 가자며, 그리로 가면 '나의 집'이 나온다고 했다. 그 다음 몇 년 동안 그녀는 비야 파탁(Biya Pathak)이라는 이름의 소녀로서 그녀의 집과 자동차에 대해 언급하며(당시의 인도에서는 차를 소유하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전생의 일과 사건을 이야기했다. 한번은 그녀가 어느 교수 부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전생에서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같이 참석한 결혼식을 기억했다. 교수 부인은 스와나라타가 비야로 살았을 때의 여러 이야기들을 확인해 주었다. 스와나라타의 예는 저명한 인도의 윤회 연구가 헤멘드라나스 바네르지(Hemendranath Banerjee) 박사에 의해서, 또 나중엔 스티븐슨에 의해서도 조사되었는데, 전생의 많은 기억들, 특히 다수의 지인들에 대해 확인되었다[스티븐슨 1974](아미트 고스와미, '영혼의 물리학').”

 

 

윤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실제로 입증이 가능한 것들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경험들이 아주 많이 보고되고 있다는 것은 이런 사례가 실제로 일어났던 과거의 사건들이 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피터(Peter)와 마리 해리슨(Maarry Harrison 1983) 두 연구자에 의한 니콜라 웨터(Nicola Wheater)에 관한 이야기이다. 니콜라는 자신이 전생에 19세기 말(니콜라가 살았던 시기보다 100년 앞선) 영국의 요크셔(Yorkshire) 근처 마을에 살던 존 헨리 벤슨(John Henry Benson)이라는 소년이라고 회상했다. 니콜라는 두 살 때 '이번에는 왜 여자 아이야? 왜 지난번처럼 남자아이가 아니야?'라고 부모에게 물었다. 곧 작은 소녀는 전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억했고 일관되게 표현했다. 그래서 엄마는 그녀가 전생에 살던 마을로 그녀를 데려갔다. 여기서 니콜라는 자신이 한 세기 전에 살던 집으로 엄마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니콜라의 엄마는 그 지역 교회의 등록부에서 존 헨리 벤슨이라는 이름의 소년을 발견했다. 이 모든 자료들은 지난 장의 이론적 묘사와 들어맞는다. 당신은 이 주제에 관해 최근의 내 책들, 그리고 인용된 책과 논문들에서 더 상세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아미트 고스와미, '영혼의 물리학').”

 

글의 앞에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영적인 현상으로서 윤회의 개념을 이해하고 뒤에 가서는 윤회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볼 것이다.

 

(4)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성이 있는 분야

 

이런 상황에서도 일단 윤회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 있다.

 

"대중적인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은 초자연 현상의 정체를 밝히는 조직인 초자연적 주장의 과학적 탐구 위원회CSICOP: the Committee for the Scient

ific Investigation of Claims of the Paranormal 창립위원이었다. 1996년, 그는 많은 뉴에이지나 초자연적 개념들에 대해 극도로 비평적이었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책을 쓸 당시에 내가 보기에, 깊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초심리학> 분야의 세 가지 주장이 있었다'라고 썼다. 그 세 가지는 어린아이들이 때때로 전생에 대해 자세히 보고하는 것, 그 보고가 정확하다고 판명된 것, 그리고 그것이 환생 말고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환생을 믿는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환생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짐 터커, '어떤 아이들의 전생 기억에 관하여')."

 

칼 세이건은 영적 현상에 대해 철저하게 회의적인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생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5) 환생 개념이 나오게 된 이유

 

“사후에 보상이 있다는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회 나간다고 해서 사후에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바람직한 삶을 살아야 종교도 의미가 있습니다. 올바르게 사는 방법은 삶이 있는 곳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물질 세상 말고 다른 곳에서 더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는 근거라도 있습니까? 사후에 모든 것이 끝난다면 여기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은 어디에 써먹습니까? 지구에서 쌓은 경험이 다른 곳에서도 쓸모가 있을까요? 한 번 사망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면 세상의 경험은 왜 필요한가요? 이런 일련의 의문에 대해 고민하면서 고대인은 인간이 다시 육신을 갖게 된다는 환생의 개념을 창안했습니다. 카르마라는 보상의 법칙이 정상적으로 작용하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은 것입니다(맨리 P. 홀, ‘환생, 카르마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

 

위의 설명은 사후에 모든 것이 끝나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환생 개념이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하지만 현실의 삶은 사후의 영적 세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치가 더 중요할 수 없다. 세상에서 얻게 된 경험의 가치에 대해서는 성경은 다르게 설명한다. 육신을 가지고 영을 성장시켜서 영이 온전한 세계에 가게 만드는 과정으로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적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차원이라고 볼 수 있는 천국은 그래서 아무나 가지 못한다.

 

실천으로 자신의 생각이 바뀌고 습관과 체질이 바뀌지 못하면 천국은 바뀌지 못한 만큼 멀리 있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인 입장이다. 천국은 자격의 개념이라기보다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영적 수준에 맞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입장이 더 정확한 것이다. 어쨌든 위의 인용문에서는 우리가 사는 물질 세상이 가장 가르침을 얻기 좋은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성경적으로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육신의 행실이 영을 만들기 때문에 육신을 가지고 있는 물질 세상이 영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데 가장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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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교과과정을 낙방하면 다시 와서 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무사히 졸업할 때까지는 계속 등교하여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계획되고 설계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 번 실수한 인간을 구제 불능으로 규정하고 저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철학자만큼 모른다는 이유로 무지한 자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범죄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던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다시 태어나 전생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바로잡고 매듭짓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맨리 P. 홀, ‘환생, 카르마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 

 

지상 세계가 육신을 만드는데 가장 좋은 최적의 환경이고 지구라는 학교와 같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육신을 가지고 행한 행실의 결과로 영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6) 왜 육신에 다른 영이 임하는가

 

간단하게 말하면 육신을 이미 벗어서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육신이 있어야 할까? 1차적으로는 눈 앞에 컵을 옮기려고 해도 영으로는 불가능하다. 육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좀 더 중요한 목적과 이유는 육신을 통해서 자신의 영의 수준과 차원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왜 육신이 있어야만 영의 수준과 차원이 올라갈 수 있을까? 영적인 세계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새로운 지혜를 받아들이고 변화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육신이 있을 때가 더 유리한 이유는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서 뇌의 생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습관을 바꾸고 습관은 체질을 바꾸어 결국 운명을 변화시킨다’는 내용을 성공과 관련된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서 어떤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습관과 체질 단계까지 바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어떤 행동을 더 이상 하면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내 삶에서 완전히 상관없는 차원까지 올라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영적인 세계는 생각하면 바로 이뤄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태복음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것은 육신의 법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영적인 상황을 보시면서 말씀하신 것을 알아야 한다. 영의 세계에서는 마음속에 음욕을 품자마자 영이 간음을 한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영적 단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대로 말씀하신 것이다. 단지 도덕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영적인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영의 특징 때문에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육신을 가지고 습관을 넘어 체질이 완전히 바뀌어야 다시는 그런 나쁜 생각조차 멀어지게 하여 완전히 상관없게 되는 것이다. 그 단계로 변화가 되어야 영적 세계의 차원이 높아져 더 높은 수준의 영계에서 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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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윤회가 '육신 갈아타기'라는 인식들

 

"동인도의 철학자이자 스승인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의 말을 인용하면, 우리의 체화된 생에서 근본적으로 불가피한 일은 유한한 기반에서 무한한 창의성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기반인 물리적 신체는 그 구성의 본성에 의해 창의성에 제한이 있다. 우리가 창의성을 위한 탐구를 계속하기 위해서 유일한 방법은 필요에 맞춰 물리적 신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윤회의 의미이다(아미트 고스와미, '영혼의 물리학')."

 

'필요에 맞춰 물리적 신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육체 갈아타기'로서 그 육체에는 영이 없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랍비 시메온 벤 요하이(Rabbi Simeon ben Yohai)는 『조하르(The Zohar,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의 근본 경전)』에서, '영혼(모나드)은 그들이 나온 순수한 물질로 다시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나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모든 완전함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 씨앗은 그들 내에 있다. 만일 그들이 이 조건을 한 생애에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들은 또 다른 생, 세 번째, 네 번째 등의 생애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했다(아미트 고스와미, '영혼의 물리학')."

 

이렇게 일반적인 윤회의 의미는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완성을 이루지 못할 때 몇 번이고 다시 생애를 시작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 성육신과 윤회

 

‘성육신’은 성경에서 비롯된 용어로서, 영어로 incarnation이라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중의 성자께서 예수님의 육신에 강림하는 것을 성육신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삼위일체의 한 분 성자의 영Spirit이 육신으로 변화되어 나타나셨다는 방식으로 가르치지만 성경에는 성자의 영이 예수님께 강림하셨다고만 나온다(이사야 11:2). 영이 육신으로 바뀌는 경우는 용납되지 않는다. 물질이 아닌 영이 물질로 바뀌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설명되어 있지 않고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없고 의미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예수님의 영/혼/육이 따로 있고 성자의 영이 돕는 영으로서 함께 하는 것이다. 성육신이라는 말의 영어 단어가 incarnation이고 여기서 윤회라는 표현은 reincarnation이라고 한다. 물론 ‘윤회’라는 용어를 성육신이 다시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접두어 ‘re-’를 붙여서 만든 용어를 불교의 입장에서는 비판적으로 본다. reincarnation이라는 용어가 성경의 성육신incarnation에서 비롯된 용어라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것은 성자가 어떻게 강림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영이 없이 비어있는 예수님의 육신에 성자의 영이 들어간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영/혼/육이 이미 있고 성자의 영이 함께 한 것인가? 이것을 명확히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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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예수님의 영이 이미 있었다

 

성자가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강림하셨다는 것은 이사야서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사야 11:1-2)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 외에도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징조를 통해서 아예 메시아로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성자의 영이 함께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이 이미 육신과 함께 존재했다고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성경에 나온다.

 

(마태복음 17:1-3)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제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셨을 때 변형되어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나오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빛나는 ‘영’Spirit을 보았다. 예수님의 육신이 변화되어 갑자기 빛이 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자들의 눈이 변화되어 영인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기록된 구절은 그들의 육신을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빛나는 예수님의 영과 그들의 영들이 더불어 말하였다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영이 대화하시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또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발각되어 끌려갈까 두려워 문단속을 철저히 했는데도 예수님은 영으로 이런 것들을 통과하여 들어오셨다.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또한 성자의 영은 하나님 보좌가 있는 천국(Heaven)으로 가시고 예수님의 영은 낙원(Paradise)으로 가셨다는 점에서 성자의 영과 예수님의 영을 구별할 수 있다(아직도 천국과 낙원을 같은 곳으로 생각하는 심각한 초보적 오류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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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성경 상에서는 분명하게 성자의 영이 이미 자신의 영이 있으셨던 예수님께 강림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한 영적 법칙일 것이므로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육과 영이 이미 있고 그에게 육신을 벗은 영이 온다. 예수님은 메시아니까 일반 사람들과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법칙은 우주와 온 영계 전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이때 다른 영이 와서 긍정적인 도움을 준다면 그는 협조영(協助靈, 도움을 주는 영)으로서 좋은 결과를 주는 영인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그 사람의 육신을 함부로 주관하고 해를 준다면 사탄, 마귀, 귀신 수준의 영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윤회를 이해할 때 한 사람의 영이 이 사람의 육신에 살았다가 또다시 영이 없는 육신에 들어간다는 ‘육신 갈아타기’ 방식은 잘못된 인식이다.

 

여기까지 일차적으로 윤회, 전생, 환생의 개념이 단지 ‘육신 갈아타기’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했다. 

2

부에서는 실제 영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왜 윤회라는 개념을 잘못 만들어내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윤회의 실례들이라고 믿고 있는 경우들을 어떤 관점으로 이해해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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