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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로 이뤄지는 성경해석>
실제로 이뤄지는 가르침을 진리라고 할 수 있다.
2부 실천적인 가르침
성경의 말씀이 실체적이고 실현 가능하게 되려면 속뜻을 알아야 한다.
(1) 비유를 해석하신 예수님
성경이 실제로 현실에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면 왜 현실적이지 않게 보였을까. 비유로 되어 있기에 해석이 필요하다.
(마가복음 4: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외인에게는 비유로’ 하신 이유는 깨닫지 못하게 감추기 위함이셨다.
(마태복음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비유로 감추신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져 하늘 역사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비유로 말씀하셨기에 예수님이 해석해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마가복음 4: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우리는 '외인'이나 '저희' 속에 속해서는 안된다. 정확하게 성경의 비유를 이해하여 실제 생활 속에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
(2) 구름 타고 오셨다
(다니엘 7: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
"많은 성경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구름을 타고, 육체적으로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나실 것을 말하고 있다(https://andthentheywerethree.blogspot.com, 웨인 그루뎀, 'Wayne Grudem’s Systematic Theology, Chapter 54' The Doctrine of the future, Monday, 18 January 2016)."
영향력 있는 조직 신학자들조차도 실제로 '구름을 타시고' 예수님이 육체로 재림하실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름 타고 오신다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 되었을까. 예수님이 오셔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나귀를 타고 호산나 찬양 받으며 들어가셨다.
(마태복음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이 때 예수님을 찬양하던 무리가 바로 '구름'이다.
(히브리서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
'구름 같이'라는 표현은 직유법이다. 구름처럼 깨끗하게 변화된 사람들이 주를 증거하니 그들을 타고서 오신다는 예언을 이루셨다.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은 '사람 구름'이 몰려와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다. 실제 구름을 타려고 하면 상식적이지 않은 황당한 가르침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3) 아담이 인류의 첫 조상인가
아담이 인류의 뿌리라는 주장은 전통적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한다. 그들은 젊은 지구를 주장하면서 실제로 6000년 만에 지구가 탄생했다는 과학적 증거를 진지하게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에는 아담 당시에 이미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창 4:14, 17).
즉 아담 이전에 이미 여러 사람들이 존재했고 그 중에서 영적인 첫 조상으로 아담을 뽑으셨다는 의미가 된다. 육적인 조상과 영적인 첫 사람을 구분해서 이해하면 된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시고 2장에서는 영을 불어넣어주시는 모습에서 육적인 창조와 영적인 과정으로 인간 창조가 각각 두 번에 걸쳐서 다르게 기술된 점으로도 알 수 있다.
(4) 우주의 수명이 6000년인가
또한 베드로후서에는 하루가 천년과 같다고 말씀하신 구절을 볼 때 하나님은 하루를 천년으로 보시고 천년을 하루도 보시듯 '축소와 확대'로 여기시기에 창조의 7일이 단지 7000년이 아니라 일곱 단계로 구분되어 있음을 뜻하고 실제로는 하루를 수십억 년으로 봐야 한다. 결국 과학에서 말한 158억년의 우주 역사가 성경적으로도 무리 없이 이해될 수 있다.
(베드로후서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5) 과학을 적용할 수 있나
만물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들어있다.
(로마서 1:20) ...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
과학은 인간이 밝혀낸 하나님의 창조와 운행 원리이다. 그러므로 과학의 법칙에서 벗어나면 진리라고 보기 어렵다. 성경에서 과학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교리에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과학은 성경의 말씀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고 성경은 과학의 영역을 확장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보완적인 관계이지 평행선을 긋거나 반발하는 입장에 있을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성경적인 가르침이 과학의 원리에서 벗어난다는 뜻은 만물의 이치에서 어긋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적용 가능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
(6) 까마귀밥과 베드로의 낚시
엘리야가 까마귀밥을 먹었다는 성경 구절(왕상 17:4-6)을 두고서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드러낸다고도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면 그때만 일어난 기적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베드로가 낚시를 던져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꺼내 성전 세를 냈다는 구절도 동일하다. 하지만 이를 '사람을 통해서 도우신' 하나님의 역사로 보면 까마귀는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비유했다. 까마귀는 시체 가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낚시를 던져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꺼냈다(마 17:27)는 내용도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하신 말씀으로 이해하면 된다(마 4:19, 암 4:2, 렘 16:16). 사람을 까마귀와 물고기로 비유한 것으로 이해하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되어 성경 말씀이 현시대에도 적용 가능하게 된다.
진정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엘리야가 행함 같이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7) 실천적 삶의 본보기
실천의 결과를 가르치면 이미 이뤄진 것이다.
"선생님의 교육은 산 교육이기 때문에 앉아서 듣기만 하면 안 되고 가서 실천해야 된다. 섭리 지도자들은 섭리 안에서 뛰면서 살았기 때문에 실천 시간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실제로 맛본 사람들이다(정명석 목사, '1990년 9월 6일')."
'말씀 듣고 가서 실천하라'고 가르치려면 실천 가능한 실제적인 논리여야 한다.
중력 법칙을 무시하고 공중으로 떠올라 휴거되라고 하면 12시가 되면은 고개 숙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과 육을 쪼개서 보고 비유는 성경적으로 풀어서 이해해야 실제로 적용 가능한 교리가 된다. 예수님의 재림 때만 일어날 일이고 계속 연기 되었다고만 하면서 이뤄지지도 않을 비진리를 가르치면 재림하셔도 이뤄지지 않는다.
진정한 지도자는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스스로 실천을 해보고서 그 결과를 가르쳐야 따르는 이들도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믿음이 약하다고만 하면 죽은 가르침이다.
"행하면서 가르쳐야 한다. 행하지도 않으면서 가르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중략)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르치려면 행하면서 가르쳐야 하는구나!(정명석 목사, 1994년 10월 30일 주일말씀)."
실체로 결과를 확인하여 믿고 따를 수 있는 말씀이 진리이다.
"우리는 관념적인 삶이 아니라 실존적인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믿으라는 소리를 하기 전에 믿어집니다. (중략) 나는 이렇게 말씀을 외치고 나가면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정명석 목사, 1993년 12월 26일 주일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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