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연재]하늘이 함께 한 삶-정명석 선생님의 공생애[6] 1980년 남가좌동 개척

jsmagazine.net | 기사입력 2025/10/15 [10:01]

[특집연재]하늘이 함께 한 삶-정명석 선생님의 공생애[6] 1980년 남가좌동 개척

jsmagazine.net | 입력 : 2025/10/15 [10:01]

[남가좌동 개척(1980)]

 

▲     ©jsmagazine.net

 

삼각산에서 남가좌동으로

 

서울에 올라가서 7월부터 9월까지 여름비와 가을비까지 삼각산에서 맞다가 내려왔습니다. 비닐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나왔습니다. 엊그제 그곳에 다시 가보니 비닐 뒤집어쓰고 있던 곳이 3억이면 사겠더라구요. 그러나 그곳은 쳐다보고 말고, 여기를 더 개발하기로 하고 내려왔습니다. 산에서 내려와서 처음에는 OO교에서 암환자가 와서 고쳐 달라고 하기에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것이 나의 사명인가 보다할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소문이 나서 기독교의 도사가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500만원을 주기에 남가좌동에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 조선대 나온 정신 이상자를 기도해주었더니 어머니가 자기는 기술이 없지만 가래를 잘 뺀다고 두 달 동안 빼주더라구요. 가래를 빼는 것이 극치의 건강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만 전문으로 가래를 뺀답니다. 그래서 이 사람도 하나님이 보내주셨구나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만 생각하고 가는 것도 굉장히 편합니다.

그 후에 그 사람들과는 다 헤어졌습니다. 500만원도 OO교 사람들이 다 갖고 가기에 30만원만 달라고 해서 신촌에다 작은 방 얻어서 시작했는데 거기서 지금의 수제자들을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미약한 곳에서 시작하십니다. 어느 사람은 삼각산 가서 기도하고 있었더니 범표 신발 사장 부인이 올라오다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어느 신학 나왔느냐고 하고 이름 없는 신학 나왔다고 했더니 목회하고 싶으냐고 하더니 교회 하나를 세워주었답니다. 나도 그런 것을 생각하고 삼각산에서 계속 기도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안 왔습니다. 지금도 사람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제일 싫어하십니다. 엊그제도 재벌가가 왔기에 쳐다봤더니 무슨 마음먹고 쳐다봤느냐고 혼냈습니다. “네가 그도 도와주어야지. 돈은 없지만 신앙으로 도와주어야지.”하셨습니다. 그러신 하나님이십니다.

 

남가좌동에서

 

여러분 중에서 캄캄할 때 내가 지나가는 것을 태양같이 본 사람 있습니까? 못 봤지요? 그러나 초창기 때 외부 사람들은 그렇게 봤습니다. 그래서 불을 꺼놓고서 설교했는데도 다 훤히 봤습니다. 남가좌동에 있을 때였는데 불을 껐는데도 얼굴이 빛같이 환하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단계로 보았다면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예수님 영인체 사진을 봤지요? 그런 발광체로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로 비춰 보이는 것입니다. 하늘에 떠있는 달을 방안에서 직접 볼 수 없지만, 문틈으로 비취는 대야 물을 통해서 본다는 것입니다. 대야에 비취는 달을 본 자는 하늘에 있는 달을 본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을 본 것도 천층 만층 구만 층입니다.

 

버스를 잘못 탐(남가좌동으로 가게 됨)

 

내가 서울에 올라갔을 때였는데 분명히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탔는데 아무리 가도 장소가 안 나왔습니다. 거꾸로 건너편에서 탔으니 다른 데로 간 것입니다. 중곡동에서 살 때였는데 잘못 타서 남가좌동까지 갔던 것입니다. 거꾸로 탔기에 전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입니다. 전혀 와보지 않았던 장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자고 해서 가보니 전에 보이던 건물이 안보였습니다. 무언가 예감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남가좌동에 가서 한동안 살았습니다. 가는 길에 살겠다고 거기서 한동안 살았습니다. 나에게는 특별한 집이 없었으니까요. ‘오늘 저녁에는 그만 갈 것인데...’하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조금씩만 연결된 사람이 있으면 거기서 자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잘 곳이 없으니까 삼각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내려온 것입니다. 그 때는 6개월 동안 차를 안 주어서 걸어서 다녔습니다. 왜 차를 안주나 했었는데 지리를 익히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리를 잘 알아야 전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대문에서 삼각산까지 걸어서 다녔습니다. 동대문에서 삼각산이 꽤 먼 거리일 것인데 나는 걸어서 다녔습니다. 미아리로 넘어가서, 정릉으로 해서 올라갔습니다. 나는 많이 걸어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아예 차라는 것은 생각치도 않았기에 순 걸어서 다녔습니다. 다리가 쑤시도록 걸었습니다. 그러면 차로 가도 한참을 가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안 걸으니까 몸이 약하더라구요. 다리를 안 써먹으면 결국에는 약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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