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의 한계> 3부 왜 곧바로 돕지 않으시는가
JS매거진 편 집 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능력자인데 왜 기도하자마자 바로 도와주지 않으시는 걸까.
(1) 기도를 바로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
"도움받고도 생각을 잘못하면 다시는 돕지를 아니한다. 의향을 옮겨 하나님 뜻을 보고 다른 자를 돕는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에 대해서는 기록하여 역사에 길이 남겨, 후손들에게 그리 말라고 거울로 삼게 하였다. 너희도 그들의 생각같이 생각들이 잘못 될까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처럼 그들의 행위대로만 도와주어라. 병들어도 금방 낫게 해 주면 낫기 전의 마음이 금방 변한다. 본성이 좋게 돌아올 때까지 조금씩 낫게 해 주고, 낫는 동안 고통 속에서 깨닫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 전에 선생이 아픈 자를 위해 기도해 줘도 금방 안 낫는다고 뜻이 아닌가할 때 하나님께서 천천히 낫게 한다. 그동안 자기 근성의 마음의 병도 고쳐야 된다하셨다. 자기 근성을 안 고치면 육이 나아도 또 마음의 본병이 온다. 삶의 함정에 빠져 고통받는 자도 하루에 한 걸음씩 나오게 해야 한다. 자기 마음의 근성을 고치도록 바로잡아 주면서 끌어내 주어야 그 마음의 근성을 고치고 온전히 만들어 그가 삶의 함정에서 나와도 온전한 인생이 되어 살게 된다(정명석 목사, '2024년 5월 29일 수요말씀')."
근성의 병을 고친다는 것은 잘못 길들여진 체질, 습관,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2) 근성을 고쳐야한다
"병들어도 금방 낫게 해 주면 낫기 전의 마음이 금방 변한다. 본성이 좋게 돌아올 때까지 조금씩 낫게 해 주고, 낫는 동안 고통 속에서 깨닫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 전에 선생이 아픈 자를 위해 기도해 줘도 금방 안 낫는다고 뜻이 아닌가할 때, 하나님께서 천천히 낫게 한다. 그동안 자기 근성의 마음의 병도 고쳐야 된다 하셨다. 자기 근성을 안 고치면 육이 나아도 또 마음의 본병이 온다. 삶의 함정에 빠져 고통받는 자도 하루에 한 걸음씩 나오게 해야 한다. 자기 마음의 근성을 고치도록 바로잡아 주면서 끌어내 주어야 그 마음의 근성을 고치고 온전히 만들어 그가 삶의 함정에서 나와도 온전한 인생이 되어 살게 된다(정명석 목사, ‘2024년 5월 29일 수요말씀’)."
근성을 고치면서 나오게 해야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3) 육신 쓰고 행하신다
우주라는 물질세계를 만든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육신은 계란 껍질과 같아서 노른자가 병아리로 부화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창조주와 같은 완성된 영이 아니라서 육신을 가지고 자기 행실로 진리의 법칙대로 살아서 창조주의 사랑의 대상체로 영을 성장시켜야 창조목적을 이루는 신부의 영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다. 우주가 있어서 육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을 만드는 요람으로써 육신이 존재하도록 우주를 만드신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으로 영을 만들고 있는 인간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을 가지면서도 영이신 하나님과도 소통이 되는 중보자가 필요하다.
"<혼>과 <영>이 영의 한계를 넘어 <육의 세계>에 와서 자기 생각대로 행하려면, 혼 자체, 영 자체로는 직접 못 합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믿는 자, 자기가 사랑하는 자의 육신을 쓰고 <육의 세계>에 와서 그 육신을 통해 자기 생각을 행하며 목적을 달성합니다. <혼>이나 <영>은 세상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 또 자기도 사랑하는 자의 육신을 쓰고 자기 목적도 행하고, 그 육신이 원하는 것도 해 줍니다(정명석 목사, '2015년 7월 12일 주일말씀')."
영이 성장하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까이에서 말씀하셔도 영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 스치는 감동과 느낌을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거나 육적인 자극에 묻혀서 지나쳐버리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택한 사람을 통해서 도우신다. 영으로 말씀하시면 대부분의 육신 가진 사람은 듣지 못하니 한계다.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 성자>도 영의 존재자이시니, <영의 세계>에서는 직접 다 행하십니다. 그러나 영의 한계를 넘어서 <육의 세계>에 와서는 <영의 세계>에서 하듯이 못 하십니다. 육신같이 음식을 먹고, 육신같이 화장실에 가고, 육신같이 물건을 들고 나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이라서 영의 한계를 넘지 못하시고, <영>으로서 <영계>에서 존재하십니다. 전지전능하셔도 ‘존재의 한계’를 정하셨기 때문입니다(정명석 목사, '2015년 7월 12일 주일말씀')."
육신을 쓰시는 이유는 영으로 할 일과 육으로 할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구원자를 통해 도우신다
"사람들의 큰 폐단이 있도다.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가 각종 고통을 겪으며 정성을 다해 자기를 도와 구원해 줬는데, 자기가 믿는 하나님께만 감사한다. 알고 보니 도운 자는 피눈물 나게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왔다. 자기 목숨도 위험에 처한 가운데에서 돕고 구해 주었다. 그런데 구출받은 자는 그에게 감격하며 고마워하지 않고, 자기가 믿는 신께만 감사하며 그가 도왔다고 한다. 하나님이 항상 구원자를 통해 돕기도 하시고, 작은 것은 구원자 스스로 행하여 도와주기도 했다. 불쌍히 여겨서다. 이같이 하나님이 보낸 자를 통해 자기를 도왔는데, 그 구한 자를 하나의 하나님의 로봇 정도로만 생각한다. 얼마나 미련하냐. 그런 자를 그냥 놓아두니 일생동안 고생을 하고 산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지 그때 보낸 사명자를 통해 도우신다. 사명자가 안 하면 질서의 하나님은 행치 않으신다. 그런데 도움을 받은 자가 하나님이 나를 도울 일이 있어 도왔다하며 응당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만 생각하니, 형제라도 또 도와줄 마음이 없어 돕지를 않는 것이다(정명석 목사, ‘2024년 5월 29일 수요말씀’)."
심지어 원수를 통해 도우시기도 한다.
“여러분들도 누가 혹시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말하는가 잘 들어봐야 돼. 어떤 때는 악한 자를 통해서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원수 통해서 할 때 있고 어느 때 별것을 다 다 하나님이 운행하시고 행하셔. 세상만사 모든 사람들도 다 하나님 필요할 때마다 합당하게 막 쓰시니까(정명석 목사, ‘2021년 6월 15일 새벽말씀’).”
(역대하 35: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적국이고 원수의 나라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런 상황에서 애굽의 왕 느고가 남유다의 요시야를 돕는다고 했을 때 끝까지 믿었어야 했지만 오히려 변장하고 맞서 싸우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하나님이 원수를 통해 도우셨어도 뒤늦게 깨달을 때가 많다.
(4) 왜 악인을 그냥 두십니까
"선생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창세부터 현재까지 항상 선은 악에게 먼저 당하고, 해를 보고 죽기도 했습니다. 종교 역사를 보아도 항상 가인은 아벨에게 고통을 주고 먼저 해를 주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미리 막지 않고, 하나님은 왜 그냥 두십니까?’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시험 볼 때나 운동할 때 먼저 시험을 치르고, 먼저 경기를 해야 이를 보고 판단하고, 행위대로 심판하고, 상과 벌을 주고 대하지 않느냐. 악과 선이 행한 것을 보고 대하고, 심판도 한다. 악이 선을 해할 때, ‘선이 선으로 대하나? 말씀으로 대하고 사랑으로 대하나?’보고, ‘같이 싸우나?’도 본다. 선이라면 의로 해야 되고, 선한 싸움으로 해야 된다. 선악 간에 행위대로 대한다. 행한 후에 대함이 마땅한 것이다. 만일 행하기 전에 심판하고, 상 줄 자에게 상을 주면, ‘왜 저들은 저렇게 되냐?’고 보는 모든 자들이 더 의문을 품고 ‘하나님이 있으면 왜 저렇게 하느냐?’고 한다.’ 하셨습니다(정명석 목사, '2023년 10월 29일 주일말씀')."
악과 선이 행한 것을 보고 판단하신다.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선도 악도 하나님은 아시니 마치 곡식밭에 해충이나 산짐승들이 와서 곡식을 해하거나 먹지 못하게 미리 철조망을 쳐 놓고 울타리를 해 놓듯이 하셨으면 선이 해를 받지 않고 더 좋았지 않습니까. 그럼 아예 악인들이 의인과 약한 자를 해하지 않으니 해를 안 받지 않습니까. 의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주를 믿고, 성령을 믿고 모두 사랑하는 자들이니 망을 미리 쳐주듯 하시면 죽지도 않고 해를 억울하게 받지를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선악을 알아야 되지 않느냐. 너희가 선이라면, 악이 있음을 알지 않느냐. 해(害)도 받고 겪으며 당해서 경험을 해야 뼈저리게 경계하고, 죄도 안 짓고 살지 않느냐. 곡식 심어 놓고 자랄 때 산짐승들이 뜯어 먹으면 너희가 그때 알고 철조망도 치고 울타리도 하듯이, 너희가 의인들을 해하는 자에게 당했으면 모두 절대 마음, 생각, 몸에 철조망을 치고 마음 문을 닫고 악인들을 경계해야 되지 않느냐. 너희 책임이다. 지혜를 주면, 하는 것은 밥 먹듯이 본인들이 해야 되지 않느냐.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자기 해하는 자에게 울타리를 치고 철조망을 치고 방비함이 합당한 이치의 삶이니라. 개인과 섭리사도 그리하여라. 전능자와 구원자를 믿고 사랑하고 살면 더 돕고, 그 편이 되어 행해 주어도 너희가 의인으로서 해당되는 것, 그 할 일은 밥 먹듯이 본인이 해야 된다. 그래야 삶이 존재하느니라(정명석 목사, '2023년 10월 29일 주일말씀')."
악을 통해 깨닫고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선생이 궁금한 것을 또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기도할 때 눈을 뜨면 지장이 많으니, 천사에게 ‘천사야! 나 도우러 왔으니, 네가 가서 옆의 사람이 코 골 때 못 하게 해 줘.’라고 말해도 천사가 못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중략)’ 이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천사도 하나다. 이 말은 천사가 한 명이란 말이 아니라, 천사라도 하는 것이 있고, 못 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둘 중의 하나다. 너희가 할 일은 너희에게 육도 있고 혼도 있으니 나와 성령, 예수가 있어도 너희가 하면 빠르지 않느냐. 즉시 된다. 사탄이 물러가게 기도하고, 꾀는 자도 막을 수 있다. 한마디 하면 즉시 물러간다.’ 하셨습니다(정명석 목사, '2023년 10월 29일 주일말씀')."
"선생이 하나님께 묻기를 ‘가령 악한 자가 해하러 오면, 천사가 도움이 됩니까?’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니까 구원받은 자의 육체를 도우러 내가 보냈지. 천사가 육체를 못 도우면 어찌 보호하라고 보내냐. 그래도 천사가 할 일이 있고, 너희가 할 일이 있다. 천사도 자유의지가 있다. 사람이 행하면 나 하나님도, 성령도, 예수도, 천사도, 너희를 구원하는 자도 너희 마음, 생각, 육을 쓰고 강하게 돕는다. 항상 너희 할 일, 작은 일들은 너희가 하고 큰 것은 나 하나님이 행한다 하지 아니했느냐.’ 하셨습니다(정명석 목사, '2023년 10월 29일 주일말씀')."
(5) 자기 책임이다
"지구상에 자살하여 죽는 자들이 매년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넘습니다. 자기 책임입니다. 하나님도 다 돕고, 죽지 않게 해 줬지만, 본인 생명을 본인이 죽이니까 절대자라도 거기에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 세계에서도 하나님은 도울 것을 다 도와주셨습니다. 할 일을 안 하시고 구원역사를 펴시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감동의 절대신 성령도, 메시아 예수님도, 땅의 사명자도 죽지 않기를 원하고 구원받게 기도해 줘도, 지구 세상 모두가 원해도 자기 구원의 책임을 안 하고 자기가 싫어하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정명석 목사, '2024년 3월 17일 주일말씀')."
이 부분에 대해서 의심스럽고 의아함을 느낄 수 있으나 그만큼의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의 대상체로 삼기 위해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랑도 하나님과 동등한 정도로 나눌 수 있게 허락하셨다. 그 말의 의미는 자유의지를 하나님과 동일한 정도로 주셨다는 뜻이다. 결국 ‘자기 책임이다’라는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창조목적을 생각하면 그만큼의 자유의지를 허락한만큼 책임도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의 한계를 정해놓으셨습니다. 이와같이 전능자 하나님의 행하심과 성령, 성자, 메시아의 행하심도 한계가 있습니다. 원하셔도 행하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 구원을 절대적으로 이뤄야 합니다. 구원뿐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자기 책임>과 <구원자 책임>과 <자기를 구원하는 신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을 연구하여 보니, 온 세상 누구든지 본인이 싫어하면 절대자 하나님이라도 거기가 한계라 절대로 구원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정명석 목사, '2024년 3월 17일 주일말씀')."
인간의 책임이 무섭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고 그토록 사랑하셨어도 하나님을 믿는 구약인들이 모르고 예수님을 괴롭게 하고 죽였습니다.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엄청난 일을 두고 뜻을 돌려막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그리고 천사들이 수십억 있어도 막지를 않았습니다. 악인들이 악하여 전체를 손대서 심판하니 의인도 갈 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악인들을 심판하고서야 그 후에 역사를 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역사입니다. <인간 책임>을 못 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악인을 통해 의인을 심판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인간 책임>을 못 한 것인데, 흔히 사람들은 의인의 죽음을 두고, 죄인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만, 의인을 제물로 쓰지, 악인을 제물로 쓰지 않습니다(정명석 목사, ‘2024년 3월 17일 주일말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충분히 허락하신 이유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 자유의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스스로 한계를 정하여 인간이 존재할 수 있게 법칙으로 운행하신다. 지금까지 모든 논의가 사람들이 육신을 가지고 이루는 과정에서 나타난 모습들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적인 세계에 더욱 근본적인 비중을 두고 있다.
4부에서는 전체적인 영역을 모두 바라보면서 확장된 관점으로 문제를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갖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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